신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연금기금의 주식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중동국가나 싱가포르가 국부펀드를 만들어 해외 주식투자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외국의 기업을 사들이는 걸 보고 국민연금기금도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을 위해 새로이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공사를 만들고 또 관련 인력도 대폭 충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운 연금기금 운용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수익률이 확실히 높아질 것 같지 않고, 설령 이러한 수익률 게임에서 성공을 한다고 해도 피폐해진 서민경제에 어떤 혜택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우선,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에 투자를 확대한다고 해도 투자대상은 전체 법인 35만여 개 가운데 상장기업 1900개에 불과할 것이다. 그 혜택을 우리 경제 전체가 누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해외투자의 확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언급되고 국내에 투자자본이 넉넉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구조도 아니다. 투자위험은 고려하지 않은 채 운용수익률이 조금 높아질 것 같다고 국내에서 근로자들이 힘써 모아 준 자금을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본을 해외에 투자한 만큼 외국의 자금들이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올 상반기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액이 27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주식시장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은 국내사정이 조금만 악화돼도 바로 빠져나가서 자본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기금투자의 위험관리 차원이 아니라면 적극적 해외투자는 국내 자본시장이나 경제구조가 선진국 수준으로 성숙한 이후의 과제다.
한편, 국민연금 보험료를 열심히 납부해 온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인 서민들과 중소기업의 실정은 어떤가?
서민들은 불경기로 생계형 대출의 이자를 못 내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성실히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다. 월 수입 360만원 미만의 저소득 임금근로자들은 소득의 4.5%를 보험료로 열심히 내고 있는데 360만원 이상의 근로자들은 소득이 올라가도 보험료는 그대로여서 보험료율은 오히려 하락한다. 예를 들면, 월수입 720만원 근로자는 소득의 2.25%만 보험료로 낸다.
서민들을 고용하고 있는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국민연금을 열심히 납부하면서도 투자할 자금이 없어서 국내외로 금융구걸을 하고 다니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 감소는 고용수요의 부족으로 이어져서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실업증가는 근로자들의 소득감소를 낳기 때문에 노후저축이나 노후 준비를 위축시키는 공공의 적이다.
현재의 국민연금기금은 국민 전체가 착실히 20년 이상 따로 모은 토종자금이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나 서민들의 부채 증가는 그 동안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금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납부했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은 이들의 어려움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가입자들을 위한 복지투자가 90년대 초에는 기금의 3~4%였는데 현재는 불과 0.2%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지금이라도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지원 방법을 더 고민하고, 그래서 이들이 고용을 늘리도록 지원해야 한다. 서민들의 생활자금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데 더 고민해서 장단기적 유동성 부족으로 파산하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를 줄여주어야 한다. 대학생들을 위하여는 그들의 미래소득을 담보로 학자금을 융자해 주는 인적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신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도 높여야겠지만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우리 실물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데 일조를 하는 역할에도 과감히 나서기 바란다.
♤ 이 글은 2008년 8월 19일자 조선일보[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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