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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훈] 법치 없이는 선진화 무망하다
 
2008-08-19 15:22:24

 

우리는 모두 선진화를 외치고 있으나 정작 선진화의 토대인 법치의 중요성은 무시되고 있다. 선진화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는 실정법을 위반한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있으며, 일부 다중의 억지와 떼 앞에서 공권력은 마냥 무력하기만 하다. 여권에서는 대통령 부인 사촌언니의 공천 비리와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를 둘러싼 금품 로비 및 당 상임고문의 군납 관련 의혹 등 비리 의혹이 발생하고 있고, 야권에서는 병원 인·허가와 관련된 국회의원의 로비 의혹 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누구도 자기 문제의 심판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의의 이치인데도, 공영방송의 사장은 검찰의 소환 요구가 공영방송에 대한 탄압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을 이유로 수차례나 소환을 거부했다. 그리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몰 시간 후의 옥외 집회는 불법임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100번이나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인가. 왜 법치가 안 되는 것일까. 그동안 집권자들이 불법적인 집단시위나 파업에 대해 그 불법을 눈감아주고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정치적 인기를 유지하려고 했던 인기 영합주의가 주된 원인이다. 그리고 여당 시절에는 준법을 강조하다가도 야당이 되면 준법을 거부하며 의사당 단상을 점거하고 장외로 뛰쳐나가는 정치인들의 임기응변식 행태가 문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60년은 선진화를 이룩하는 기간이어야 한다고 선언한 다음,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로 ‘법치’를 강조했다. 당연한 지적이다. 법치가 확립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법치’여야 하는가. 우선 ‘법’은 사회 공동체의 질서 유지와 번영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다. 법치가 되면 우리 모두의 일상 생활이 예측 가능해지고 미래에 대한 체계적 설계가 가능해진다. 투자와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이다. 법치가 확립된 국가에서는 경제 활동에 관한 각종 입법이 잘 지켜지기 때문에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그 법을 신뢰하고 안전하게 투자를 할 수 있다. 법치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선행 조건이다. 또한 법치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정쟁과 대립을 최소화함으로써 정치 비용도 절감해 준다.

반면에 법치가 안 되면 그 사회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우리 생활에 예측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외국인은 투자를 기피할 것이며, 국내 기업인은 예측 가능한 투자처를 찾아서 해외로 나갈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의지가 곧 법이 될 것이며, 권력에서 소외된 집단들은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정도가 심해지면 결국 무정부상태가 될 것이다.

법치의 확립이 절실하다. 권력형 부정부패, 불법 파업, 불법 시위 등 온갖 형태의 불법에 대해 준엄하고 예외 없는 법의 적용이 요구된다. 대중적 인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온정주의를 넘어서, 정파의 득실을 떠나서 법치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법치 앞에서는 네 편, 내 편의 구별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나와 내편의 부정과 비리에 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과거 정권들이 나와 내 편의 잘못은 안 보고, 남의 불법만을 처벌하려 했기에 이 땅에 법치가 확립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법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 신뢰를 잃은 정부가 내세우는 법치는 편파성이나 야당 탄압을 핑계로 하는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여야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준법을 부정하는 정치 행태도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법치의 전통은 정권을 초월해 이어져야 한다. 이제 법치를 확립함으로써 대한민국 선진화의 길을 다져야 한다.

♤ 이 글은 2008년 8월 19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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