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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내우외환의 위기와 국민통합
 
2008-08-19 14:27:23

 

베이징에서 날아오는 잇따른 승전보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축하하는 또 다른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의 값진 승리를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는 이면에는 나라 안팎으로 드리워진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어두운 그림자로 말미암은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충동도 작용하는 듯하다. 지난 몇 달 사이 우리 주변의 사정이 밖으로는 제국주의 시대의 망령(亡靈)이 되살아나며 지정학(地政學)적 족쇄가 조여 드는 듯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는 가운데, 안으로는 불신·시기·증오로 휩싸인 고질적 국민 분열증이 재발하는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는 중국·러시아·일본이란 세 나라만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 특히 그 세 나라는 우리보다 훨씬 큰 나라들이며 예외없이 제국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도 계속 우리 민족의 생존을 잠재적으로 옥죄는 불변의 상수(常數)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세 이웃나라들로부터 근래에 나타나고 있는 세 가지 걱정스러운 경향을 우리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첫째, 지난날의 제국적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복고적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점이다. 둘째, 세 나라가 각기 자기 식으로 정치적·경제적 개혁을 달성했으나 그 결과가 과연 장기적 안정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의문과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셋째, 이러한 복고적 분위기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대책으로 민족주의 또는 내셔널리즘을 고양시키는 증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의 방대한 시설과 화려한 개막행사를 지켜보는 한국인들은 이웃나라의 큰 잔치를 축하하는 마음 한편으로 중화(中華)의 제국적 영광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국가적 의지 표현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평화적 공존공영의 한·중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방대한 소비에트연방으로 군림했던 러시아의 제국적 전통과 그루지야의 복잡한 내부사정이 뒤얽힌 오세티야 사태를 둘러싸고 러시아가 보여준 힘의 과시는 우리에게 여간 강력한 인상을 남겨주지 않았다. 정연하게 그러나 위압적으로 진입하는 러시아 탱크부대를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6·25 한국전쟁과 1956년의 헝가리를 상기하게 되었다. 이렇듯 제국주의 시대의 쓴 뒷맛을 잊을 수 없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근래에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이 취한 막무가내 식의 입장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에 공식적으로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1905년이 어떤 해였는가 하는 역사적 의의(意義)를 의식적으로 망각하겠다는 복고적 자세를 주저없이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른바 메이지유신으로 급속히 서구화와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게 뛰어들어 먼저 이웃인 조선을 후안무치하게 강탈한 을사늑약의 해가 바로 1905년이 아닌가. 어쨌든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이미 지나버린 단막극으로 치부하고 제국적 영광에 대한 향수를 새로운 내셔널리즘으로 포장하려는 위험한 풍조에 일본이 동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다이내믹스가 새로운 형태로 작동하는 듯싶은 국제정치의 불안한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민족적 운명을 지키고 미래를 펼쳐갈 것인가, 바로 그것이 8·15를 맞은 우리의 역사적 과제다. 우리 국민이 지닌 뛰어난 자질과 능력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휘날리는 태극기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 않는가. 다만 우리의 앞날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갈라지고 흩어지며 대결하는 고질적 분열증을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러한 분열증을 치유하려면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가슴에 품고 있는 서운함·분함·억울함 등의 한을 공동체의 문제로 인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체계적으로 착수하는 것이 필수의 첫걸음이라 하겠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경구를 원시적 강박관념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온 국민이 함께 되씹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 이 글은 2008년 8월 18일자 중앙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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