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동해안의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다. 1962년 이 마을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울산시 건설공사 종합기공식이 있었다. 울산이 한국경제개발의 상징도시로서 비약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울산공단 기공식 장면을 담은 사진에는 당시 한국경제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단상에는 작업복을 입고 새마을 모자와 비슷한 모자를 쓴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단하에는 흰색 한복차림에 머리에는 비녀를 꽂고 등에는 아기를 업은 아낙네가 어정쩡하게 팔을 올린 채 만세를 부르고 있다.
당시 기공식단의 오른쪽에는 대형 구호가 적혀 있었다. "공업센터 건설하여"가 이 구호의 앞부분이다. 그러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뒷부분은 "가난에서 해방되자"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공업센터 건설하여"의 뒷부분은 "복지사회 이룩하자"이다. 물론 당시 사람들이 어떤 의미의 복지를 생각하였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경제개발 초기부터 경제개발의 궁극적인 목표 중의 하나가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요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사방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 60년 동안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많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미완의 건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대의민주주의는 아직도 정착되지 못했다.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건국 60년사에 상대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 경제이다. 한국경제는 2차대전 이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했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다. 지구상의 최빈국 중의 하나로 출발하여 이제는 우리 경제 규모가 아프리카 모든 국가들의 경제규모를 합친 규모보다 커졌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경제는 미완성이다. 고령사회로 진입할 2018년 이전에 우리 경제는 지속 가능한 안정성장경제로 안착해야 한다. 중국경제의 변방에서 근근이 연명하는 주변경제가 아니라 지식과 기술이 융합되고 발산하는 활기찬 개방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 이후 한반도를 경영할 수 있는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 경제가 미완성인 또 다른 이유는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복지분야이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공동체, 사회적 약자 그리고 사회적 소외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복지의 문제는 중요한 아젠다로 부상하게 된다. 복지철학과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선진경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시스템이 성장과 복지의 두 축을 균형있게 정립하지 못하는 한 한국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의 뇌관을 품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에는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일과 동시에 정치, 경제, 통일 등의 각 분야에서 미완의 건국을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신뢰받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성장정책의 프로선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장측면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가 지금은 비록 2부 리그로 추락한 2급 프로선수이지만, 머잖아 다시 1군으로 복귀하여 다시 그 역량을 발휘할 날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완전한 건국의 토대를 마련하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성장과 복지의 두 축에서 모두 프로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복지분야의 어설픈 프로선수로 군림했던 과거 정부보다 더욱 복지를 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도 살고 복지도 산다.
미완의 건국이지만 그래도 건국 60주년을 자랑스럽게 즐겨보자. 그리고 향후 있을 건국 60주년을 더욱 자랑스럽게 만들어 보자. 이를 위해서는 미완의 경제시스템을 완성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46년 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 쓰였던 구호는 "공업센터 건설하여 복지사회 이룩하자"였다.
♤ 이 글은 2008년 8월 7일자 조선일보 [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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