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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대한민국의 미래, 분권과 자치에서
 
2008-07-25 11:46:47

대한민국의 미래, 분권과 자치에서

 전상인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 / 서울대 사회학 교수)
 
 
얼마 전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촛불시위와 관련해 호소문 하나를 발표했다. 두 달여 동안의 국정 마비를 바라보면서 모두에게 국가와 사회의 안정 회복을 간곡히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정파가 서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한마음으로 호소문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지금 시국(時局)이 비상이라는 뜻일 게다. 과연 작금의 대한민국은 이명박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혹은 거버넌스 구조의 근본적 한계 상황에 가깝다.
 
이른바 1987년 민주화 체제하에서 대한민국은 수차례에 걸쳐 권력의 수평 이동 혹은 좌우 교대를 경험해 왔다. 하지만 최근 촛불정국에서 확인했듯이 이 나라 국민은 같은 정치공동체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보수와 진보세력은 사회통합을 전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활을 건 사실상의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묻고 따지는 노력이 더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러려면 차라리 각자 정의롭다고 믿는 세상을 선택해 따로따로 평화롭게 공존이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는 권력의 수직 이동 또는 하향 분권을 통해 국정을 근원적으로 재편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명실상부한 지방화 시대로 가자는 얘기다.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싫다고 해서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평생 척지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촛불시위에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봤다고 해서 대의민주주의의 후퇴를 더 걱정하는 사람들과 갈라져 살 수도 없다. 평준화 교육도 마찬가지다. 찬성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평생 떨어져 살 건가.

 
敵意가 中央에서 격돌하는 사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면 보다 정교한 지방분권사회를 통해 갈등과 대립을 완화해 가는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주(州)마다 교육체제나 조세제도가 달라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 그렇다고 국가적 통합이 위협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중앙정부는 안보와 국민통합, 주요 국책사업의 조정에 치중하고 일상(日常)의 많은 부분은 지방에 맡긴다면 촛불처럼 증오가 중앙무대에서 퇴로 없이 맞부딪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사회 발전의 최적단위는 더는 국민국가가 아닌 추세다. 지방단위 간의 실질적 정책 차이와 우열 경쟁이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원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의 의미가 나날이 퇴색하는 가운데 도시나 지역 혹은 권역(圈域)이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재부상하는 것이 오늘날 이른바 신중세(新中世)시대다. 두바이나 싱가포르의 무한질주나 14세기 베네치아를 꿈꾸는 런던의 화려한 부활, 그리고 메갈로폴리스 혹은 거대도시권의 글로벌 경제 할거 현상이 이를 웅변한다.
 
대내적으로 다양한 대한민국은 결국 대외적으로 ‘열린’ 대한민국과 상통한다. 이제는 지방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부산이 자주적,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도시국가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고무적이다. 2년 전 이맘때 국제자유도시를 목표로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것도 옳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언이나 방향이 아니라 실천이다. 대한민국이 지방중심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상투적 협조나 지원이 결코 아니다. 정부 주도의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따위는 지방의 국가 예속을 연장시킬 뿐이다. 선결과제는 국가권력 자체의 획기적 축소와 과감한 분할이다. 말하자면 대권과 통치의 시대가 아닌 분권과 협치(協治)의 시대다.

 
지방이 세계무대 발전 견인해야

 
대한민국 60년의 성공을 계속 이어가려면 사회통합과 사회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대담한 발상 전환이 요청된다. 내부적 갈등을 경쟁의 에너지로 바꾸면서 궁극적으로는 경쟁의 대상을 나라 밖에서 찾는 방안이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작금의 개헌 논의 수준은 다분히 구시대적이다. 이제는 각 지역단위에서도 분권 및 자치시대를 위한 헌법적 구상을 모색해야 한다. 전국 시도지사들의 촛불집회 우려 표명에 새삼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연합(EU)에 필적하는 ‘연합한국(Korean Union)’ 혹은 미합중국에 버금가는 ‘한합중국(韓合衆國·United States of Korea)’을 생각해 보는 것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 이 글은 2008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 [동아광장]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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