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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등뒤서 총맞은 남북관계
 
2008-07-17 11:38:39

등뒤서 총맞은 남북관계

 유호열 (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금강산 관광에 나선 50대 여성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지 벌써 1주일이 되어 간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너무도 충격적이고 비극적 사건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건 자체를 실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어 통탄스럽다. 이번 사건에 관한 북한 당국의 설명은 논리적으로 허점투성이이며 그조차도 일관되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다. 사업주체인 현대아산 측의 초기 설명이나 방북했던 윤만준 사장의 설명도 북쪽 당국의 일방적 해명을 전달하는 수준일 뿐 사실을 밝히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사건 당일 피격 사망한 박왕자씨를 봤거나 당시 현장 근처에서 총성을 듣고 피격 현장을 목격했던 우리 관광객들의 얘기나 증언과는 상반된 것이어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최우선 과제는 현장을 조사해 사건 경위를 명확히 규명하는 일이다. 아직도 북한이 우리 측의 현장조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일방적 주장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과오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 신원 식별이 가능한 시각에 50대 여성을 군인들이 조준 사격, 사망케 한 사실은 법이나 합의사항 위반 여부를 떠나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반인도적 도발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건 발생 장소와 경위를 들어 사건 당사자인 군인들은 물론 상부 지휘·감독 부서를 보호하고 정당화하려고 실체적 규명에 협조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피해자가 사망했고, 목격담 등 증언은 있으나 구체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조사 없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은 반드시 우리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현장조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며 우리 당국은 대북전통문 발송 및 현대아산을 비롯한 모든 접촉 창구를 가동하여 현장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국내외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사건의 실체가 명백히 밝혀지면 후속 조치 마련은 한결 수월할 것이며 경색된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이 추진된 결과 남북관계는 양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양적 성장의 그늘 하에서 남북 간의 진정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교류협력을 위한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도 마련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무고하고 순진한 50대 여성이 경계선을 불과 수백 미터 침범했다고 조준 사격 당하는 끔찍한 야만성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었고 북한 경비군에게 남한 관광객은 여전히 적이고 섬멸의 대상일 뿐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더구나 하루 관광객 1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관광단지에 민간인들의 신변안전을 책임질 전담 요원이나 사건 발생 시 수사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후 모든 남북교류협력사업들의 내실이 새롭게 다져져야 할 것이다. 금강산이나 개성 등 관광사업뿐 아니라 각종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사업과 이에 따른 민간인 방북사업에서 사업주체들의 안전불감증이나 사업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남북관계의 전반적 현실이나 우리 민간인들의 신변 안전에 소홀했던 부분들이 법적·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안전에 주목하다 보면 지나친 규제와 억압된 분위기 탓에 사업 축소를 우려할지 모르지만 대북사업은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개선 속도에 맞춰져야만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울러, 남한의 민간인이 어떤 경우에도 북한 군인들과 직접 맞닿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격리돼야 하고 남북 양측의 보안·안전 담당자들이 상주하면서 군과 민간의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금강산 관광사업과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북한 군부뿐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인식과 결심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이 글은 2008년 7월 16일자 세계일보 [통일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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