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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달러 폭탄'으로 환율을 내리겠다고?
 
2008-07-14 12:06:30

'달러 폭탄'으로 환율을 내리겠다고?

 강석훈 (한반도선진화재단 금융정책팀장 /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전쟁은 시작되었다. 지난 9일에는 정부가 전격적으로 외환시장에 '도시락 폭탄'을 투하하였다. 점심시간대에 서울 외환시장이 다소 한가한 상황에서 정부가 달러를 대량 매도하였다. 순간적으로 환율은 1달러당 무려 30원 이상 하락하기도 하였다. 정부가 낮에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폭탄을 투하하더니 밤에는 역외(域外) 금융시장에도 개입하였다. 원화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밤과 낮을 잊은 채 국내와 국외에서 전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번 외환시장 개입은 정부가 원화 가치를 높여서 물가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 침체기에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물가마저 오르게 되면 실질소득이 더욱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원화 가치의 인위적 상승은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해 보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환율정책은 심정적으로는 이해는 가지만 실제적인 실현 가능성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향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향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원유값일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이는 원화 가치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서브프라임의 숨은 뇌관이 터진다면 국제적인 유동성 경색 국면이 도래할 수 있다. 이 경우 외국인들의 1차적인 매도 대상은 원유값 상승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한국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원화 가치를 높이려면 시장의 힘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략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러한 능력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환율게임에서 유능한 프로선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출범 초기에는 불과 몇 개월의 상황 변화를 예상하지 못하고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린 바 있다. 이제 3개월 만에 다시 정책 기조를 완전히 바꾸었다. 미래 통찰력이 부족함을 스스로 만천하에 보인 것이다.

발 빠른 국내외의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정부가 보유한 외환보유고의 변화를 면밀히 주목하고 있다. 외환보유고에 근거한 정부의 개입 능력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순간 시장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감행될 것이다. 만약 시장의 흐름과 반대되는 방향의 정부 개입이 지속될 경우 원화 가치의 안정이라는 정책 효과는 내지 못한 채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외환보유고마저 잠식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물론 원유값이 하락하는 경우 원화 가치가 상승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가만히 두어도 원화 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외환시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부동산값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과 싸웠다면 이명박 정부는 달러 가치의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과 싸우고 있다. 부동산과의 싸움이 정부와 가계와의 전쟁이라면, 달러값과의 싸움은 정부와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의 전쟁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가 시장과 싸울 때 대부분의 경우 승자는 시장이었다. 원유값과 자본 유출이라는 대내외적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 이번 환율게임에서도 정부가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교과서적인 환율정책에 따른다면 정부는 시장의 수요·공급과 반대 방향으로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보다는 환율의 급변동을 방지하는 선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교과서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2008년 7월 11일자 조선일보 [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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