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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근] 쇠고기 집회, 이젠 국회 설 자리 내주라
 
2008-06-17 13:58:05

쇠고기 집회, 이젠 국회 설 자리 내주라

강경근 (한반도선진화재단 감사 /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미국산 쇠고기를 불안하게 봐온 국민 의식을 지나쳐온 이명박 정부가 5년 승차권의 값을 새삼 비싸게 치르고 있다. 10일은 이 정부 성립의 법적 근거가 되는 1987년 헌법의 동력이 된 6·10 민주항쟁이 그 정점에 있던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헌정투쟁 이후 21년 만인 오늘 여전히 헌정질서는 정착되지 못하고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6월 민주항쟁은 한국 사회의 시민 의식 수준과 성장동력을 한 단계 높인 국민의 저항권이었다. ‘넥타이 부대’로 상징된 시민들은 거리에서, 차에서 함성을 울려 비민주적인 헌정제도와 군부의 정권적 잔재를 씻었다. 새로운 시대, 좀 더 세계적인 수준에 다가설 수 있는 권력의 유연성을 그때 만들 수 있었다. 그 10년 뒤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파산의 파고를 우리가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시·공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이렇게 쟁취한 민주화의 수준을 한 단계 한 차원씩 높여 그 항쟁으로 얻은 정치 영역을 실생활 민주주의로 전환해 왔다. 그 1987년 항쟁이 헌법투쟁이었다면 이번 쇠고기 시위는 생활 세계에서의 먹을거리 민주화, 즉 생활투쟁의 성격이 짙다. 그 바탕 위에서 ‘강부자·고소영’ 내각과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가 같아야 한다는 시민적 요구를 정부는 가볍게 처리했다. 내각과 청와대는 자신들의 수준에서만 이를 보아 국민의 눈높이를 인식하지 못한 잘못을 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촛불시위 등에 참여한 시민들은 1987년의 민주항쟁으로 제정된 현행 헌법 질서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할 때가 됐다. 제17대 국회와 제18대 국회의 교체기인 5월부터 약 40일간 진행된 쇠고기 집회의 결과 정부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촛불집회와 시위로 나와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참가자들과 이에 동의하는 국민의 의사는 충분히 전달된 것이다.

대통령도 이를 인식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각자의 인격은 발현됐고, 그 집단적 의사 표현을 통해 안전한 쇠고기를 먹겠다는 공동의 이익과 이를 통한 시민들의 사회적 연대도 추구됐다. 고시도 연기하고 미국에 그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는가. 쇠고기 집회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여론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기능했고, 국회의 기능이 약화됐을 때 소수 의견을 국정에 반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으로 대의정을 파괴하고 민중이 직접 통치하도록 하는 것까지 가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집회를 현행 헌법 제정의 동력이 됐던 6월 민주항쟁의 그것에 비견하면서 이 집회를 계속하고자 하는 시도는 극복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정권 투쟁적 총파업이나 6·15선언까지의 집회 연장 등이 그것이다. 촛불시위가 법이 정한 규칙을 무시하고 ‘국민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순간 국민은 민중을 추종하는 허수가 된다.

이제 쇠고기 집회는 국회에 그 설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통합민주당 등 야당은 시청 앞 광장에서 여의도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 제18대 국회 원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살고 대의정도 살고 쇠고기 집회의 본질인 국민의 민생도 살 수 있다. 당장 유가가 오른 데 따른 유류비 부담 증가분의 일부를 소득세 환급 명목으로 현금 지급한다는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 등 서민의 생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적한 민생 문제들이 의회에서 법으로 수렴돼야 한다.

1987년 당시의 반민주적 헌법 아래서 민주 헌정 그 자체를 쟁취하기 위한 헌법투쟁과 지금의 민주 헌정 아래 정부의 잘못된 결정 시정을 요구하는 생활 투쟁의 그것과는 논의의 틀과 차원 자체가 다른 것이다.

 

♤ 이 글은 6월 9일자 문화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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