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3 16:44:29
투자 진작에 올인하라
이인실 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로 정권을 잡았지만 좀처럼 경제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경제 상황이 악화 일로에 있는 것은 해외 충격에 기인하는 바 크다.
서브프라임사태는 1분기를 정점으로 최악의 고비를 넘긴 듯했다. 그러나 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1983년 원유 선물거래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의 선물거래 가격이 배럴당 133달러를 넘어섰다. 유가가 끝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연초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유가 150달러 시대가 현실화되는 것 아닌 가하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최대 원유 생산국인 나이지리아의 정정(政情) 불안, 중국 대지진에 따른 수요 증가 등 시장 수급 요인도 있지만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미 달러 가치도 한 몫하고 있다. 엔화에 대비해 달러화의 가치는 12년 만에 최저이며, 유로화에 대해서는 유로화가 도입된 1995년 이후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위안화에 대해서도 2005년 위안화의 달러 페그제(자국 환율을 달러화에 고정시키는 것) 폐지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녹록하지 않은 글로벌 경제 환경하에서 얼마 전 KDI가 전망한 올해 4.8%대의 경제성장률은 비현실적인 숫자로 느껴진다. 총선이 끝나자 이명박 정부는 경제 올인에 들어갔지만, 어떤 기조로 경제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민경제가 어려우니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 공염불이 되었다. 만든 지 2년도 안된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서라도 추경을 통해 경기 부양성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고 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용두사미가 되었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 경제가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은 이러한 글로벌 환경 변화를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국민들이 이미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국민총소득 대비 수출입 비중이 2001년 85.9%에서 2007년에는 94.2%로 상승해 대외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반면, 수입상품 가격 대비 수출상품 가격의 비율인 '순상품 교역조건'은 2000년 97.6에서 2007년엔 70.2까지 떨어졌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수출 증가율로 경제 성장이 4~5% 수준을 지탱해 왔지만, 실질 국민소득은 2~3%의 낮은 수준을 보이면서 교역조건 악화의 충격을 내부에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른바 중간 규모의 개방 국가로 독자적인 금리 정책을 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역조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될 경우 미래 경제에 구조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교역조건이 악화된 원인은 그 동안 우리 경제가 수출은 싼 가격에 하는 대신, 수입은 비싼 가격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는 구매력은 약화되고 소비는 부진해지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제라면 교역조건이 악화될 경우 수출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국내 생산 요소가 수출산업에서 내수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교역조건 하락의 충격을 외환위기 이후 원화 가치의 하락으로 방어해 왔다. 즉 원화 가치 하락을 의도적으로 용인해 수출산업의 교역조건 하락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을 저지하고 지속적으로 수출을 증가시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수 부문에서는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어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에까지 이르렀다.
현 시점에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세계적 금리 인하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금리 인하를 용인하는 것이다. 둘째 환율의 인위적 조작을 최소화하고 외환시장을 수급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수를 진작시켜 교역조건의 악화로 인한 소득 감소를 극복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정부가 교역조건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 올인 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그것은 투자 진작이다. 재정 지출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보다는 가속도 원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투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투자 진작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내수 진작이 필요한데,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강력한 규제 완화를 통해 서비스산업 경기를 살아나게 것이다. 예를 들어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유통서비스업의 경우 비업무용 토지에 대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시켜 주는 등 각종 서비스 분야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순상품 교역조건의 악화로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이를 생산성 향상이 아닌 재정 지출로 대응하게 되면 재정 적자만 늘어나고 만성적인 저성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교역조건의 악화 충격에 대해서는 신축적 환율제도가 효과적이라는 거시경제이론의 기초를 되새겨볼 때이다.
♤ 이 글은 2008년 5월 30일 조선일보 Weelky BIZ [경제칼럼]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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