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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기업이 사업 전념할 수 있도록
 
2008-05-21 09:52:38

기업이 사업 전념할 수 있도록

이인실 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새 정부가 ‘섬기는 국정철학’을 누차 강조했지만 이것이 가장 도입되기 어려운 데가 국세청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5월16일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국세청이 국민을 섬기는 정신을 세정(稅政) 현장에서 실현해 보겠다고 나섰다. 이번에 결의한 ‘세무행정 쇄신 방안’에는 납세자가 세무조사를 행한 세무공무원을 직접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납세자 감시 시스템도 들어 있다.

세무조사도 사전 통지하고 중간에 그 간의 진행 내용과 향후 방향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사가 끝나면 결과를 바탕으로 회계·세무분야 컨설팅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무조사를 고객인 납세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바꾸겠다는 것이다.

사실 세무행정은 역대 정권마다 과세 권력으로 주목을 받아 왔으며 이로 인해 최근에는 국세청장이 사법처리되는 불미스러운 일까지 발생했다. 국세청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지만 겉으로 드러난 세정의 효율성은 낮은 수준은 아니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세공무원은 1만8049명으로 인구 1000명당 0.37명에 불과해 일본 0.44명 이탈리아 0.60명 등 선진국보다 적으며, 징수 세액 100원당 징세비 역시 0.79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2원보다 낮다.

하드웨어적인 면에서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기능별 조직으로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했으며 납세자보호담당관제를 도입하고, 홈택스 서비스를 구축하는 등 납세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세정 혁신을 강도높게 추진했다. 이에 따라 세무 부조리가 눈에 띄게 줄었고,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세무행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하다.

이번에 집중적인 쇄신의 대상이 된 세무조사의 근본적인 목적은 과세 정보를 축소 신고하는 납세자에게 세무조사를 해 납세 정보 축소 요인을 줄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러한 본질을 떠나 부동산 투기, 불법과외 단속, 과소비 억제, 기업 구조조정 촉진 등 사회경제적 정책 목적을 위해 남용돼 왔다. 그러다 보니 세무행정이 행정 서비스가 아닌 과세 권력화하게 됐다. 이러한 과거의 예를 볼 때 이번 국세청의 세무행정 쇄신안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크나 저조한 납세 의식 및 뿌리 깊은 세정 당국에 대한 불신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세무행정의 관행과 기법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조세법의 영향을 받는 경험의 축적을 통해 형성 발전해 나가기 때문이다.

세무행정은 그 속성상 권위적이고 권력적이며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세 권력의 비대화를 방지하고 견제하기 위해서 세무행정의 전략 계획을 사전에 심의하고, 사후에 그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평가·심의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또한 세무행정은 조세법의 집행 작용이기 때문에 조세절차법 그 자체에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면 세무행정도 따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으므로 절차법의 민주적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신고납부제도(self-assessment system)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세무행정이 성공하려면 자발적인 납세 순응도가 높아져야 한다.

최근에는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재화와 서비스는 물론 자본의 국가간 유출입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세수입 누출이 우려된다. 이제는 세무행정도 적극적 행정으로 바뀌어 건전한 외국인 투자 및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세정 지원을 해야 한다. 불합리한 과세기준을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것은 물론, 세정 집행의 일관성·예측가능성을 높여 안심하고 기업들이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세정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기업이 ‘갑(甲)’이고 세무관서가 ‘을(乙)’이 돼 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만큼이나 세무 행정에 있어 진정한 발상의 전환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2008년 5월 19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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