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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금산분리' 실험이 필요하다
 
2008-05-02 11:29:27

'금산분리' 실험이 필요하다  

  이인실 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최근 경제가 심상찮은 가운데 임시국회에서 정부는 새 국정 철학을 담은 75개 법안의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산업은행 민영화나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 방침 등과 맞물려 있는 금산분리완화법이다. 이에 대한 반대는 매우 거세다. 재벌기업 편들기라는 것이다.
 
결론이 나지 않는 오랜 논쟁이긴 하나 금산 분리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산업과 금융자본의 관계는 이론적으로 규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정립된 것이다. 금산 분리 찬성론자 사이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미국의 예는 사실 금융 역사 차원에서 보면 우리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절대 강자라는 면에서 배워야 할 게 많긴 하지만 우리의 금융제도는 오히려 독일로 대표되는 대륙 국가들과 유사하다. 무엇보다 독일에서 은행의 역할은 우리나라처럼 막중하다. 독일의 은행은 기업에 대출해 주고, 기업이 발행한 채권과 주식을 인수하고, 기업에 이사를 파견해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제도이다. 독일은 지점 제도가 잘 발달해 은행이 대형화될 수 있었고, 막대한 산업자본 조달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증권시장은 덜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과거 압축성장을 위해 자금자원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은행 중심으로 금융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1980년 이후 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시작하였지만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은행 위주로 투입되면서 은행 집중 현상이 더 강화되었다.
 
이에 반해 미국은 대공황으로 은행이 연쇄도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막고자 단일점포제도(unit bank)를 채택했다. 은행은 기업 발행 주식과 채권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 대신 투자회사로 하여금 이를 전담케 했다. 당연히 산업 발전에 필요한 대형 자금을 단일점포가 담당하기에는 벅찼기 때문에 기업은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제도가 발달했다. 그러나 미국도 1980년대 전 세계적으로 밀어닥친 탈규제와 1987년 증권시장 대폭락을 계기로 금융제도를 손보면서 1999년 금융현대화법을 의회가 오랜 논란 끝에 통과시키게 되었다. 이 법률에 근거해 미국은행은 앞으로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인수하고 방대한 지점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미국의 금융제도는 독일식으로 수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산업과 금융자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규제를 풀지 않았다. 이 이면엔 1980년대 초 저축기관의 부도위기가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글래스스티걸법에서 금산 분리를 하면서 산업자본이 은행이 아닌 저축기관은 소유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었었지만 금융현대화법은 이마저 막았다. 그러나 금산 분리는 막으면서 금융행위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점은 매우 크다. 금산 분리는 지키되 세계적인 금융변화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금산 분리 정책이 금융산업 발전이 아닌 금융기관을 이용한 경제력 집중 억제 목적으로 사용되면서 건전한 금융기관의 활동을 도리어 억제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비금융 주력자에 대해 4% 이상 의결권을 제한하는 금산 분리 정책은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을 외국 자본의 소유로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국부 유출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매각 과정의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펀드자본주의 시대이고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미국 절대 강자의 시대도 지났다.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부상하는 우리의 금융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투명한 비금융 주력자에게 10%까지의 소유한도 제한을 풀어주는 실험을 시작할 때이다.

 
♤ 이 글은 2008년 5월 1일자 세계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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