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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人事시스템 이대로 둘 순 없다
 
2008-04-17 10:06:49

人事시스템 이대로 둘 순 없다

이인호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 KAIST 석좌교수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대선 이후 불과 넉 달 사이에 크게 떨어진 중요한 이유로 흔히들 인사정책의 실패를 꼽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에서 각료 발탁,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호응을 자아낼 만한 인재 발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에 대한 냉소와 불만은 그보다도 훨씬 더했고, 그것이 결국 지난 대선 결과로 표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총선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는 참으로 ‘절묘’한 결과가 나왔다고 반기는 사람들도 각 당에서 국회의원으로, 특히 비례대표로 선출된 개개인의 생소한 면모를 보면 무슨 근거로 그들이 국민의 대표 자격을 얻게 된 것인지 의아해 하며, 국정을 맡겨야 한다는 데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사 발탁과 검증 체계의 문제가 드러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처음이 아니며 정치의 영역에만 국한된 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도입한 총장 직선제도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고 정당별 후보공천위원회 제도나 정부 산하기구 기관장 선출제도 또한 그전의 임명제나 추대제도보다 월등하게 좋은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사생활 노출돼 장관기피 ‘비정상’

민주화의 큰 결실로 꼽히는 주요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 또한 총체적인 능력 검증보다도 개인의 재산 상태나 그 밖의 신상 문제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정파적 싸움에 매몰되면서 정작 유능한 인재들은 사생활의 보호를 위해 아예 공직을 기피하도록 만드는 역기능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 장관 후보들의 이름을 신문에 슬쩍 흘림으로써 여론의 반응을 떠보던 관행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실속 있는 인사 검증 절차가 아니었나 하는 넋두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치열한 자리다툼이 물밑에서 벌어지는 가운데서 인재난 타령이 나오는 악순환을 퇴치하는 인사 관리의 길은 무엇인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공직에 대한 바른 의식의 확립이다. 모든 요직은 ‘돌아가며 나누어 먹어야’ 하는 권리가 아니라 엄청난 책임을 수반하는 의무로서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을 뿐 아니라 능력과 경험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맡아야만 한다는 의식을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 없이는 훌륭한 의사나 음악가,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런데 사람을 다스리는 어려운 일을 하게 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발탁에서만은 그 원리를 무시하고 이권 분배의 필요성만 앞세운다면 국익의 극대화를 위해 나라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인재를 활용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피의 순환의 필요성이나 기회균등의 원칙을 무시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옥스퍼드대가 영국 총리 25명,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 30명 이상을 배출했어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미안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은 공직이 먹을 자리가 아니라 어려운 봉사의 자리라는 인식이 영국 국민의 머릿속에 확고하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책임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면 뒤따라 나오게 될 것이 인사 발탁 제도의 개선이다. 정치란 유권자들의 삶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장 효율적인 타협과 절충을 이루어내는 예술이라는 면에서 아직까지는 보통선거보다 나은 제도는 발명되지 못한 듯하다.

선발特委에 맡겨 엘리트 발탁을

하지만 대학 총장 등 특수한 자격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기관장들이나 그 밖의 고등 전문가들을 발탁하는 경우에는 직선제나 한두 번의 모임에서 지원자를 검증하고 마는 인사위원회보다는 선발특위를 구성해 몇 주, 몇 달, 심지어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자천 타천 후보들의 자격을 다각도로 검증한 뒤에 최종 후보를 결정하고, 일할 수 있을 만한 긴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 이 사람은 안 되는가”보다는 “왜 이 사람이어야만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국회의원 다선 같은 경륜이 짐이 되는 이상한 낭비적 관행도 종식될 수 있을 것이며,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명예를 위해 어려운 공직에 투신하는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 계층이 점차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08년 4월 14일 동아일보 [사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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