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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사리((私利)정당과 사욕(私慾)후보들
 
2008-04-08 10:12:54

사리((私利)정당과 사욕(私慾)후보들

김영봉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위원 / 중앙대 경제학 교수

 
 
이틀 후 우리는 299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국민을 대신해서 국법을 만들고 국정을 살펴달라고 고용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상 대단히 비싼 상전(上典)이다. 세비, 보좌관, 비서, 운전기사 등등 인건비로만 의원 1인당 연 22억원, 4년간 총 2조6000억원 이상 먹힌다고 한다. 그밖에 해외나들이를 1등석으로 모시는 등 많은 특권과 편의를 우리 세금으로 드려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질서는 반드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동반해야 한다. 자유기업 시장체제는 모든 경기자(economic players)가 대한민국이라는 경기장에서 마음껏 뛰어 능력대로 얻어낸 과실을 자유롭게 가져가게 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경기자, 곧 국민이 그 경기규칙(競技規則)의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다. 국민은 그를 제외시키고 만든 규칙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런 게임에는 싫증내고 포기하거나 저항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성장은커녕 분열과 투쟁이 격화돼서 체제의 존립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서구(西歐) 국민은 이 당연한 권리를 얻는 데 수백 년을 투자했다. 13세기 영국의 존 왕이 세금과 징용을 마구 요구하자 토착귀족(barons)들은 병사를 일으켜 왕으로 하여금 그 권리를 제약하는 대헌장(Magna Carta)에 서명하게 했다. 약속, 배반, 희생과 응징이 거듭되는 가운데 왕과 신민은 상호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협상을 정례(定例)화하게 됐고, 그 대표를 뽑는 선거권은 귀족, 토호를 거쳐 모든 재산소유자에게로 확대됐다. 이어 프랑스 대혁명, 차티스트운동 등 시민, 노동자, 여성과 소수집단의 선거권획득 노력이 희생과 좌절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이뤄졌다. 실로 선진국의 오늘날 국회는 오랫동안 흘린 피와 눈물이 점철된 결과로 시민들이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해방 후 어느 날 미국이 가져다 준 것이다. 얼떨결에 공짜로 얻은 국회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선거를 하는 자도 당선된 자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독재자가 등장하자 쉽게 포기해 버렸고, 통치자가 임명하는 국회의원도 생겼었다.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오늘날도 우리는 정당의 몇몇 실세가 공천을 나누어주어 국민의 후보를 뽑는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높은 분들의 권리이지 어떻게 국민의 권리인가.

바로 4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을 어겨 탄핵됐을 때 우리는 민주시민의 모습이었는가? 마치 왕조(王朝)의 임금을 잃은 양 국민들은 우르르 울면서 이른바 '탄돌이'들을 대거 국회에 입성시켜 주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과거로 돌아가는 국가'가 됐다. 대한민국 역사는 기득권자만 누린 실패한 역사이므로 과거 법질서보다는 타협과 양보를 우선해야 하며, 생산을 장려하기보다는 기득권을 시정하는 나라가 되자는 것이었다. 이리해서 지구촌 모두가 기록적 성장을 이루던 21세기 초를 우리는 투자와 고용보다 과거사 심판, 평준화 교육, 수도이전, 공기업 배분 등에 국가자원과 국민에너지를 소진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것을 정리하고 새 역사를 쓰자는 국민정신이 발현돼서 새 대통령이 선출 됐다. 그러나 과거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선진화시대'로 가는 것이 대통령이 선언만 한다고 되는 것인가. 오늘날 한국경제는 '일모도원(日暮途遠)' 그 자체다. 그야말로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인구는 늙어가고 세계적 경기후퇴와 자원난이 극심해지는데 시민사회의 의식과 관행은 구태의연해서 한 발짝 개혁도 어려운 형편이다. 오직 믿을 것은 분출됐던 국민정신이 다시 뭉쳐 기업과 정부를 채찍질하여 그 비전과 역량을 일으키는 힘이 돼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회의원선거판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기막힌 이름을 가진 사당(私黨)같은 정당들과 부나비처럼 그사이를 떠도는 사욕(私慾)의 기회주의자후보로 넘치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사람 틈에서도 가장 유능하고 책임감 있게 국회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 빠짐없이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그런 주인의식을 포기하는 국민은 결국 사리(私利) 위선자에게 국회를 넘기고 그 신민(臣民)이 되는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2008년 4월 7일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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