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31 14:13:23
‘상호주의·실용’으로 냉철히 대처하라
유호열 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일주일 사이 북한의 대남·대외 공세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4일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문제삼아 개성공단 경협사무소 우리측 요원 철수를 요청하더니 27일 새벽 기어이 11명의 공직자를 전격 퇴거시켰다. 25일부터 서해상에서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더니 28일 오전 10시30분께에는 남포 앞바다에서 단거리 미사일 수발을 발사했다.
같은 시각 외무성 대변인은 6자회담에서의 미국의 태도를 비난하며 핵불능화가 파기될 수도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북한 해군사령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유령선이며 남측 함정들의 영해 침범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9일에는 또다시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이 우리 합참의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핵 선제 타격을 주장했다며 이를 취소, 사과하지 않으면 남측 군과 공직자들의 입북을 거부할 것이며 그들이 먼저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의 전화 통지문을 보내왔다.
역시 같은 날 외무성 대변인은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 임기 1년 연장이 통과된 것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고 미국, 유럽 및 일본의 책임을 경고했다. 일요일인 30일에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과 모든 언론 매체가 총동원돼 남측의 선제 공격이 개시되면 남한은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군사논평원의 글을 발표했다.
북한의 이같은 압박 공세는 배후에서 김정일과 강경 군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그동안 관망 자세에서 벗어나 구체적 행동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핵 문제를 비롯, 미사일과 서해 NLL 문제, 남북대화를 비롯한 남북경협과 인권 문제가 총망라됐으며, 외교·안보·통일 부서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모두가 연관된 전방위적 사태로 확대됐다. 출범 1개월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윤곽이 드러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약한 종합 선물세트를 통째로 안긴 셈이다.
북한의 의도는 이명박 정부를 테스트하고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지지부진한 6자회담이 그들 의도대로 타결되기를 촉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4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하는 동시에 핵 불능화를 파기할 명분 축적과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의 태도와 입장으로 볼 때 남북 정상회담 합의 이행이나 쌀과 비료 지원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데 따른 불만의 폭발로도 여겨진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NLL 무력화를 비롯해 우리 군 최고 당국자의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면서 남북관계 전면 중단과 불바다보다 훨씬 위험한 잿더미설로 위협하는 예의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남북간 무력 충돌까지를 염두에 둔 계획적 행태이며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응에 여하에 따라 더욱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상황 전개 과정과 북한의 의도를 감안하여 즉각적인 반발보다는 차분한 대응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원칙에 따라 당당히 대응하되 사태의 장기화에도 대비하는 듯하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잘못된 관행과 현 상황에 대한 북한의 오판을 지적하면서 자칫 사태를 과소평가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다가오는 총선을 의식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북한은 우리 측의 발언이나 행동을 문제삼아 어깃장을 놓고 몽니를 부리곤 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당국자들이 언행을 더욱 신중히 하되 말보다는 실천, 관념보다는 실용의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북한의 위협과 이상 징후에 대해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가동하고 그 가시적 실체를 보여주어야 한다. 남북관계에는 상대가 있음을 인정하고 중장기 북한 발전계획 수립에 앞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순서다.
♤ 이 글은 3월 31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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