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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올드보이, 올드웨이
 
2008-03-24 10:09:19

올드보이, 올드웨이

- 경제에 정부개입 유혹 버리고 인내심을 갖고 시장에 맡겨야 -

강석훈 한반도선진화재단 금융정책팀장 /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

 
올드보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 정부의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신 분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국회의 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올드보이(old boy)들은 이제까지 살아 온 방식도 국민들이 싫어하는 올드웨이(old way)였음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올드웨이로 살아 왔지만 그래도 생각과 정책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난 10여년간 좌파적 정부가 추진하였던 거대 정부의 환상을 깨고, 시장과 민간의 힘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 믿음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아 균열되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은 물가안정 문제이다. 서민생활의 측면이나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물가안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물가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인수위 시절에 통신비 20% 인하라는 당황스러운 정책을 제시한 바 있고, 연이어 라면 값을 100원을 올린 기업을 안절부절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뒤를 이어 이번에는 50대 생활필수품을 선정하고 이러한 품목의 가격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식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물가가 안정된다는 올드웨이식 사고(思考)의 예들이다. 마치 박정희정권 시절 세무서 직원이 동네 중국집을 다니면서 자장면 값을 체크하던 일을 연상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생활필수품이든 사치품이든 간에 개별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요,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가격이라는 것이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시장에 대한 직접개입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법이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통화량을 적절히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미시적으로 볼 때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기업 간 담합을 엄격히 금지하여 경쟁을 유도하는 일이 중요하다. 통관절차를 효율화하고, 규제비용을 축소시키고, 물류비용을 감소시켜 기업의 원가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 당장 코앞에 닥친 선거를 의식하자면 강제로라도 값을 못 올리게 하고 싶은 정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며 장기적으로 더욱 큰 후유증을 유발한다.
 
올드웨이 사고는 비단 물가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운하와 같은 거대한 토목공사를 통해 지표상 경제성장률을 올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은 올드웨이 사고이다. 대운하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원을 연구개발이나 교육에 투자하여 미래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거나, 저소득층의 주거문제 해결이나 청년층 일자리창출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뉴웨이(new way) 사고이다. 원화 약세를 유도하여 수출을 촉진하겠다는 생각도 올드웨이 사고이다. 외환시장을 활성화하여 환율의 급등락을 방지하고, 환율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정책방향이 뉴웨이 사고이다. 기업들에게 규제완화를 해주었으니 이제 투자로 화답하라는 생각도 올드웨이 사고이다. 기업은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아우성치게 마련이며, 구체적인 투자 결정은 오로지 돈이 될 때만, 오로지 돈이 되는 곳에만 투자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뉴웨이 사고이다.
 
정책당국자로서 경제를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선언한 선진경제는 인내심의 바탕하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올드보이가 과거의 상징이 아니라 미래와 인내심의 의미로 변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2008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 [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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