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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성역화 ‘덩어리 규제’부터 혁파해야
 
2008-03-24 09:34:28

성역화 ‘덩어리 규제’부터 혁파해야

이인실 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후폭풍이 예상보다 심하게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시장에서 요동을 치면서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의 나락에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새 정부 출범에 부풀었던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급락하고 있다.
 
새 정부는 법인세율의 3%포인트에 이르는 파격적인 인하와 다양한 감세정책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일으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규제 개혁이다. 국부의 원천이자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가 완화돼야 일자리가 늘고, 다시 인재 경영과 투자를 통해 재도약할 수 있다는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에는 매우 공감한다. 그렇지만 ‘전봇대뽑기’에서 시작해 규제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새 정부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우려는 각 부처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면서 사실로 다가온다. 지식경제부도 ‘규제 전봇대뽑기’를 강조하면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과 연계해 이번만큼은 기업 입장에서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실현하겠다고 한다.
 
규제 개혁에 대한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한 1980년대 이후 임기 초에 규제 개혁을 부르짖지 않은 정부는 없다. 그 결과 우리의 규제 개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성공 사례다. 규제 개혁을 아예 법정 절차로 규정지었다. 행정부에서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모든 규제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사전 점검을 받도록 한 것이다. 시스템만 놓고 본다면 적어도 규제 개혁 차원에서는 대단한 선진국이다. 그런데 왜 매번 규제 개혁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규제개혁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보여주는 등록된 규제의 건수 추이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4년에는 모두 7767개에서 계속 늘어나다가 2007년 말에는 5116개로 줄어들었다. 물론 규제의 총량이 준 것이 아니라 분류를 바꾸어 통폐합을 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규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국민이나 기업이 느끼는 심적 및 물적 부담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규제 개혁 강국이 아니라 규제 양산 강국이다.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부의 규제 개혁이 뛴다면 국민과 기업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는 제트기를 타고 날아다닌다. 불량 저질 규제는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다.
둘째, 정부 공무원들이 혁신 의지를 불태운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규제의 울타리 속에서 안주해 특권과 이권을 향유하는 이익집단의 반발과 집요한 로비로 인해 규제를 없애는 데는 대단한 집념이 필요하다.
셋째, 최근에는 그나마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행정부 발의 입법보다 의원 입법이 5배나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최근 신설된 불량 저질 규제 중 상당수가 의원입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규제는 어디에도 막는 데가 없고 오히려 이익집단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로비를 하게 된다.
넷째, 일만 터지면 정부가 해결하라고 아우성치는 언론·시민단체·정치권도 규제 양산에 일조를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면 규제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관료 조직도 규제 측면에서는 하나의 이익집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세계 경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규제를 없앤다고 당장 경기가 활성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개혁은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새 정부는 규제 만능주의 함정에 빠진 관료와 이익집단의 조직화된 저항에 과학적으로 대응해 성역화돼 있는 핵심 덩어리 규제를 송두리째 뽑아내겠다는 각오로 임하기 바란다.
 
 
♤ 이 글은 2008년 3월 20일자 문화일보 [오피니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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