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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삼각 파도 맞은 한국 경제
 
2008-03-18 10:38:53

삼각 파도 맞은 한국 경제

이인실 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

 
작년 2분기 이후 국내 경제는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올 들어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미국 실물 경제에까지 광범위하게 파급되고 있고,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시장의 변동에 일희일비하며 외환, 채권, 주식시장이 번갈아 가며 요동 치고 있다.

국내 실물 경제에 대한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시장 친화적 정책을 강조해 온 새 정부의 출범으로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컸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경기 침체에 대한 처방을 걱정하게 됐다.

국내 경기에 대한 우려를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 2월 미국 비농업부문 고용통계 발표였다. 이것이 두 달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여 미국의 경기후퇴 국면 진입이 기정사실이 됐다.

그러나 사실 국내 경기에 대한 불안감은 이미 지난해부터 잠복 상태였다.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은 경제에 약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데, 본격적인 유가 급등이 작년 2월부터 시작됐으니 이때쯤 그 파급 효과를 걱정해야 할 참이었다.

미국은 공격적인 금리 인하와 함께 한 가구당 최고 1800달러의 세금 환급, 며칠 전 FRB의 2000억달러 규모 단기 유동성 공급에 이르기까지 연일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전반적으로 악화일로이다.

무엇보다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국제 유가가 끝 모를 초강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 행진이다. 노동부 발표에 의하면 미국의 2월 야채 값이 전년 대비 20% 폭등했다. 민간소비 위축이 불가피하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불안은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진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부실 규모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침체 국면에 빠진 미국 경제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 성장률은 작년보다 1%포인트 정도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미국에 대한 국내 경제의 의존도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다. 예컨대 대미 수출비중이 지난 2002년 20.2%에서 지난해 12.3%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경기 침체는 국내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하다.

신(新) 정부는 기업 투자를 진작시키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감세(減稅)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잠재성장률의 하락으로 우리 경제는 안정 성장률인 5% 전후 수준에서 고착되는 상황이다. 이를 뛰어 넘어 강력한 성장 지향적 경제 정책을 시현하려면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적자 확대 등 거시경제적 후유증을 감내해야 한다.

이미 올해 1월 경상수지 적자가 11년 만의 최대 폭인 26억 달러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수출 호조에 힘입어 상품수지가 흑자를 본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 상품수지가 작년 11월 이후 급락하여 지난 1월에는 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물론 미국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탄탄하다. 시장 다변화와 수출 구조의 고도화에 힘입어 두 자리 수의 견실한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내수 회복으로 수입도 늘어나고 있어 상품수지는 악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원화의 나홀로 강세 영향으로 서비스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한편, 세계 증시 조정세가 이어질 전망이라 소득수지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올해 경상수지는 10년 만에 적자로 전환될 것이다.

기업 투자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상반기에 기업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으로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정부의 다양한 정책 지원이 현실화되더라도 투자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역시 쉽지 않다. 신흥시장의 급부상으로 국내에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가 있어도 외국인들이 거들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주주 중심 경영이 확산되어 주주의 이익 실현을 중시하다 보니 국내 투자를 획기적으로 진작시키는 경영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것은 국내 소비이다. 지난해 1분기를 바닥으로 회복세를 보여왔던 민간소비는 확대 추세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 여파로 고용의 질이 본격적으로 개선되지 않아 소비 확대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미국 발 세계 경제 둔화가 가시화될 경우 소비 역시 영향권 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리해 보면 미국의 경기 침체가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골디락스(goldilocks·건실한 경제 성장과 낮은 인플레가 함께하는 호경기)에 익숙해진 한국 경제는 앞으로 미국 발 경기 침체 및 달러 약세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인플레이션 우려, 국내외 금리차 확대로 인한 금융 불안이라는 삼각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한다. 경기 침체를 선제적으로 방어하고 금융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금리 인하 등 적극적 거시 정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 이 글은 3월 14일자 조선일보 [칼럼 inside]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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