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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머슴 공직자'를 정말 원한다면…
 
2008-03-13 09:35:26

'머슴 공직자'를 정말 원한다면…

김영봉 한반도선진화재단 지도위원 / 중앙대 경제학 교수

 
공무원들이 드디어 임자를 만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27년간 건설업체 밑바닥에서 CEO까지 거치고 4년간 서울시를 운영한 분이다. 그는 모든 단계의 온갖 관리들을 다 겪어봤을 것이며, 관료사회의 행태를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분이 "공무원이 이 시대의 걸림돌", "철밥통 머슴"이라고 토로하고 나선 만큼 공무원 개혁을 향한 새 정부의 각별한 호소와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공무원 수준, 정부 서비스와 국가경쟁력은 서로 비례한다. 싱가포르는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가 발표한 '세계 경쟁력 2007'에서 정부 효율성 세계 1위, 국가경쟁력 2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2년 전 삼성전자가 건설하려던 4억 달러 투자, 800명 고용 규모의 반도체 합작법인 생산공장을 이 나라에 빼앗긴 적이 있다. 독일측 파트너 질트로니크사(社)가 외국인 자녀 교육시설 등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지만 이에 대한 싱가포르의 대응은 번개 같았다. 한국에서라면 사무관급이 처리할 일을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장이 직접 나섰고 불과 몇 시간 만에 행정처리를 모두 끝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공무원의 관료주의, 도덕적 해이, 부조리 등으로 국고를 낭비하고 공장을 쫓아낸 사례가 얼마나 많겠는가.
 
대통령은 이들을 닦달하고 정리할 의지를 보이지만, 문제는 경쟁과 퇴출이 없는 조직에 어떻게 기율(紀律)을 불어넣겠는가 하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는 IMF환난 이후 냉혹했던 구조조정 기간을 무풍(無風)으로 보낸 힘을 가지고 있다. 당선의 기세를 몰아 추진했던 정부조직 개편도 알맹이를 몽땅 빼앗긴 꼴이 됐고, 노무현 정권은 5만~9만명의 공무원을 늘렸다는데 겨우 3000명 정도 감축효과만 있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질타(叱咤)보다는 정말 효과적인 제도를 도입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들을 칼날같이 살벌한 경쟁시장에 노출시켜야 진정한 관료 및 조직 개혁을 바랄 수 있다. 공무원 공개시험제도를 없애고 싱가포르처럼 100% 상시(常時) 개방형으로 뽑아 기업과 경쟁해서 생존하게 하고 그에 상응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정부 서비스를 극대화함에 어떤 조직과 인력이 소요되는지도 기왕이면 최량의 민간 자문기구에 맡겨 판단함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관리(官吏)는 머슴이 맞다. 공무원의 조직, 즉 관료기구[bureaucracy]는 국민의 표(票)처럼 원천적 권력이 아니고 국민이 맡긴 작업을 도와주는 기계[machinery]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리는 국민에게 허가를 내주고 영업금지를 시키고 세금과 보조금을 늘리거나 줄이고 늑장과 까탈을 부리면서 스스로 힘의 발원지(發源地)로 탈바꿈한다. 마치 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름인 것처럼, 관리는 국민에게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상전(上典)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나쁜 풍토 아래서는 관리가 똑똑할수록, 새벽부터 일할수록 국민은 더욱 피곤해진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공무원의 질, 양보다 시장과 법 질서가 지배하는가 여부에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공무원이 국민을 통제할 영역은 없어지고 봉사할 일이 늘어난다. 국민 모두가 법질서를 지키면 관리뿐 아니라 대통령도 머슴 역할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전 국민을 명령하고 계획해야 한다. 또한 국민 사이에 발생하는 차질과 갈등을 지도자 이하 당(黨)서기들이 지령, 배려, 독려, 조정하기 때문에 민법, 상법, 계약관계 따위의 관념이 없어지고 당원, 관료가 판관(判官)이 된다. 그러므로 법질서, 시장경제, 머슴 공무원, 국가경쟁력은 모두 한 몸인 것이다.
 
우리 법질서는 일반 공무원보다 과거 윗분들이 특정집단에 자의적 잣대로 시혜(施惠)를 했기 때문에 문란해진 것이다. 공권력은 농민, 취객, 노점상, 시위대, 전교조, 민노총, 시민단체 등 치외법권자들이 마구 유린하는 가운데 허수아비가 됐다. 계약이 여하했던 간에 떼쓰고 우르르 몰려가면 봐주는 관행이 공무원의 권력을 키우고 정직하게 법질서 지키는 시민을 역차별했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가의 머슴 서비스를 빈부, 귀천, 신념 여부를 가리지 말고 공평히 공급해야 한다. 차제에 공무원 중의 공무원인 대통령께서 이 점도 명확히 천명해 주시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08년 3월 13일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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