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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뉴욕 필 평양공연 北 노림수는
 
2008-02-29 10:04:27

뉴욕 필 평양공연 北 노림수는


유호열(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26일 저녁 동평양대극장에서 미국의 대표적 교향악단인 뉴욕 필의 공연이 있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의 제3막 서곡을 필두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그리고 조지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이 거장 로린 마젤의 지휘 하에 차례차례 연주되었다.

 
본 공연에 앞서 북한과 미국의 국가(國歌)가 관객과 단원 모두 기립한 가운데 연주되었고, 무대 양 옆에는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세계 최고 교향악단의 장중한 선율은 청중을 압도하였고,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아리랑’은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공연은 북한 조선중앙방송 TV와 라디오를 통해 북한 전역에 생중계되었으며, 남한을 비롯한 전 세계에도 실시간 중계됨으로써 역사적 공연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스탈린식 1인독재 국가인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과 대외적 폐쇄체제, 인권유린 국가로 알려져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오히려 핵 개발을 강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받고 있으며,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 약속도 제대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심각할 때는 수백만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하였고, 아직도 매년 남한으로부터 수십만t의 쌀과 비료를 원조받지 않으면 궁핍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에 입국하는 모든 외부인은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으며 당국이 지정해 준 명소 이외에는 어떤 사진촬영도 할 수 없다. 외부세계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대다수 북한인은 외국 문물과 정보에 철저히 차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적대국 미국의 교향악단이 혁명의 심장 평양에서 철저히 미국적인 음악들을 미국 국가와 함께 연주했다는 사실에 한껏 흥분하고 온갖 기대에 부푼 전망들이 난무하는 일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뉴욕 필을 비롯한 미국 측에서 큰 관심을 갖고 호응하였고, 그 과정에서 남한의 기업과 언론도 작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이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을 최대 적국으로 간주하고 각종 구호와 선전을 통해 대결과 반목을 고취해 왔다. 난관을 뚫고 기어이 핵개발을 강행한 것도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이다. 그러한 미국에 대해 북한이 체제와 이념을 넘어 음악을 통한 문화적 교류에 그토록 정성을 쏟고 환대한 것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있어야 뉴욕 필의 역사적 평양 공연의 의미를 완결할 수 있다.
 
다소 성급하지만 2008년 2월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이 음악을 통해 전체주의 철의 장막 속으로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던 1956년 미국 보스턴 교향악단의 모스크바 공연이나 1973년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의 베이징 공연과 비교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다.
 
미국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뉴욕 필을 초청함으로써 북핵 문제의 본질을 희석하되 대미 관계는 개선하려는 김정일의 성동격서식 외교책략으로 간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미국의 상징을 평양 중심부에 불러들임으로써 지도자의 뱃심을 만천하에 과시하려는 선전술일 수 있다. 음악정치를 표방하는 김정일 정권이 대내적으로 정당성과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역사는 지도자나 정권의 의도대로 정책이나 사회현상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경험적 사실이다. 뉴욕 필을 초청한 북한 당국의 배경과 의도가 복합적인 만큼 결과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토의 땅’에 신세계로부터 희망의 씨앗이 뿌려졌다. 낙관할 정황은 아니지만 비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평양의 미국인들이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앞당긴 따뜻한 봄바람이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08년 2월 28일자 세계일보 [통일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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