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 / IT전략연구원장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히트 영화 "백투더 퓨처" (Back To The Future)에서는 21세기 생활상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가 나온다.하늘을 나는 자동차, 비행기 승강구 같은 자동차 도어와 플라잉 보드 등 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한 상상력으로 흥미를 더해준다.그러나 정보통신수단에 이르면 갑자기 상상력은 뚝 멈춘다.동전 넣는 공중전화와 배불뚝이 브라운관 TV,두툼한 이동전화는 21세기가 어느 정도 지난 시점이라면 찾기 어려울 것이다.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작가 군에 하필이면 정보통신 전문가가 빠진 결과일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융합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주의할 점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우리가 생활 속에서 보는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성으로 융합현상을 이해하면 새로운 시대의 달라진 환경에 맞는 올바른 방책을 세울 수 없다.
최근까지 지루한 논쟁을 거치고 있는 방송통신융합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가 선진적 기술을 갖추어놓고도 융합의 주체를 둘러싼 발목잡기에 붙잡혀 있는 동안 사업에 있어서는 후진국이 되어버린 IPTV.그 논쟁에서 IPTV의 미래에 대한 모습은 없다. 현재의 방송, 현재의 정보통신서비스를 기본적으로 상정한 채 진행되는 논쟁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을 수 없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홈네트워크의 하나인 IPTV는 그 1세대에 불과하다.지금 정보통신전문가들은 그 2세대,나아가 3세대 변용에 관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2세대 IPTV는 곧 시장에서 선보이게 될 4세대 이동통신 기반 위에서의 서비스를 포함하여 사람이 서비스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 다니며, 내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IPTV"를 구현하는 것이다.2세대 IPTV가 되면 방송(broadcast)의 cast라는 의미는 사라지고,웹2.0시대에 맞게 명실상부한 양방향 방송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사극에서 자기가 평소에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과 전혀 모습과 성격이 다른 탤런트가 연기를 한다면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탤런트를 선택할 수 있으며, 스토리 전개 역시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달라지게 할 수 있다. 기존의 백과사전을 대체한 위키피디아 식의 사극이 만들어지게 되면 아마도 보다 고품격의 합리적 스토리 전개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드라마의 뒤편에서는 역사적 고증을 놓고 네티즌끼리 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3세대 IPTV 단계에서는 3차원의 디스플레이나 인터페이스가 이루어진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손가락의 지시 만으로 가상 디스플레이가 몇 겹으로 작동하는 될 것이다.
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플라잉 보드를 타고 가며 뒤쫓아 오는 자동차로부터 아슬아슬하게 도망가는 장면이 나오는데,결국 터널을 앞에 두고 날아다니는 자동차에 의해 구조되는 것으로 스토리는 전개되지만,이 정도의 교통장비가 나온다면 입고 다니는 컴퓨터와 가상 디스플레이가 보여주는 GPS 교통 환경 정도는 돼있어야 했을 것이 아닌가.
현재의 방송통신 융합과 관련한 논의와 기구개편, 그리고 그 주체의 선정 등을 살펴보면 마치 날아다니는 자동차 시대의 두툼한 휴대 전화기처럼 어색한 점들이 있다.
융합이란 서로 다른 두 주체가 합쳐져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의미이다.통신방송융합의 경우에도 기존의 정보통신,기존의 방송의 모습은 그대로 놓아둔 채 통신과 방송의 경계만 허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그야말로 융합서비스를 이루게 한다는 의미이다.
♤ 이 글은 2008년 2월 19일자 디지털타임스의 [DT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