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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북한주민 22명의 北送배경 석연찮다
 
2008-02-20 09:45:05

북한주민 22명의 北送배경 석연찮다


유호열(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8일 새벽 연평도 인근에서 발견된 북한 주민 22명이 만 13시간 만에 판문점을 통해 북송됐다고 한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15~17세 학생 3명이 포함된 일가족 13명과 이웃 주민 9명이 탄 고무보트 2척이 표류하던 중 우리 측 해역에서 발견됐으나 조사 결과 귀순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명돼 전원 송환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송환된 이들 22명 전원이 처형당했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니 한마디로 경악을 금치못할 상황이며, 노무현 정권 5년동안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완결판을 보는 것처럼 어처구니가 없다.

 
우선 이번 사건은 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못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린 학생과 일가족이 포함된 북한 주민 22명이 북한에서도 명절인 설날 새벽에 조개잡이를 나섰다는 것부터가 얼핏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타고 있던 고무보트의 존재나 북한 당국의 송환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 등도 이들이 과연 단순 표류자였는지를 의심케 한다. 더구나 이들이 발견돼 송환되기까지의 시간과 경로를 종합해 보면 실제 이들에 대한 조사는 매우 촉박하고도 허술하게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의혹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출범이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국회 정보위원회를 즉각 소집해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한다.
 
사건의 전말이 조속히 그리고 진실하게 밝혀져야 함은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나 사회 전체의 탈북자에 대한 인식과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헌법상 북한 주민들도 우리 국민이다. 북한 정권이 실효적으로 북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으나 북한 주민들이 그들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 영역이나 제3국으로 탈출한 경우 그들의 신변 안전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요구하는 최고 수준의 권리이자 의무다. 이번 경우에도 북한 주민 22명의 발견 시점부터 송환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북한 공민이면서도 같은 동포이자 우리의 국민이기도 한 시점에 있었다.
 
따라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역내로 들어온 북한 주민들은 최적의 상태에서 최고 수준의 조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북한에서 살아온 주민 22명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단순 질문이나 요구에 따라 그들의 진실한 의사를 확인할 수는 없다. 수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눈앞에서 불에 타 사라지는 비극도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탈북인이 발견된 경우, 그들에 대한 최초 영접부터 조사 내용·절차·방법 등 총체적 매뉴얼을 시대에 맞게, 우리 법 질서와 인권의 보편성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
 
의도와 관계없이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이 송환돼야 할 북한인, 귀찮은 탈북자로 취급돼서는 안된다. 탈북인 누구나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가장 안정된 상태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들의 의사가 확인돼야 한다. 당연히 조사에는 탈북인 전문가와 인권 및 법률전문가가 참석해야 하고, 최소 일정 기간 이상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화해야 하며 모든 기록은 보존해야 한다.
 
서둘러 송환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장래나 북송자 자신들의 신변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북한 당국에 대해 송환된 22명의 생사 확인을 요청하는 것은 그들의 요구대로 전원 송환시켜 주었던 우리 정부의 몫이다. 만약 이들이 소문대로 처형됐다면 누가, 언제, 어떻게 처형했는지 그 내용을 끝까지 추적하여 인권 기록에 낱낱이 보존하여 후일 그에 합당한 조치가 반드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탈북인 문제는 더 이상 남북한의 정치선전이나 정략적 차원이 아닌 인권과 법 제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 이 글은 2008년 2월 19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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