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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한미 FTA, 정치지도자들의 큰 결단 필요
 
2008-01-31 09:39:24

한미 FTA, 정치지도자들의 큰 결단 필요

 

 박태호 한반도선진화재단 FTA 국제협력팀장 /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지난 가을 국회에 제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5개월이 지나도록 상임위에서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한·미 FTA 비준 처리를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금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있는 미국에서도 한·미 FTA의 의회 비준이 어차피 늦어질 것으로 보고 우리가 먼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한·미 FTA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한·미 양국 모두가 마냥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

당초 정부의 FTA 로드맵에 의하면 한·미 FTA는 중장기 추진 과제였다. 그러나 정부는 2006년 초 미국과의 FTA 추진을 발표하고 즉시 미국과 협상에 들어갔다. 당시 일반 국민은 왜 한·미 FTA를 이렇게 빨리 추진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미 FTA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즉 한·미 FTA는 그 자체의 경제적 이득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역주의의 파고(波高)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FTA 허브국가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장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은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한·미 FTA협상이 종료된 후 유럽연합(EU)과 인도가 한국과 FTA협상을 추진하게 되었고, 일본은 중단된 FTA협상을 가능한 한 빨리 재개할 것을 원하고 있으며, 중국 또한 한국과의 FTA체결에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한국과의 FTA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이유의 하나가 바로 한·미 FTA에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FTA가 조기에 발효되지 못하고 지연된다면 한국과의 FTA에 대한 여타 국가들의 관심도는 급격히 저하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에서 FTA 허브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무산될 수 있다. 한·미 FTA는 미국에도 중요하다. 미국은 한·미 FTA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 EU나 일본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고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통합되어 가는 동아시아 경제권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각각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한·미 FTA의 조기 비준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부시 행정부는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3~4월쯤이 의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낼 수 있는 적기(適期)로 보고 대(對)의회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28일 미 의회에서 행한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 동의를 촉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기적으로 미국보다 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제 곧 각 당에서 총선에 대비해 본격적인 공천 절차에 들어가면 한·미 FTA 비준 처리는 일단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반드시 먼저 FTA 비준 처리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미국의 상황을 동시에 고려한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시나리오는 우리나라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외 경제정책 분야에서 이룬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한·미 FTA를 현 정부가 최종 마무리하는 것이 되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국민들이 미흡하다고 우려하는 한·미 FTA관련 국내 대책은 향후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로 고조되고 있는 지역주의 경쟁에서 주변 경쟁국들보다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다시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 지도자들이 근시안적인 정치적 계산을 뛰어넘어 국가의 장래를 위해 큰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2008년 1월 31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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