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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族집단과 닛폰 망가
 
2008-01-22 09:56:23

族집단과 닛폰 망가


안세영(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경쟁력팀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경제가 10년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과감한 정부조직 축소 덕분입니다."

 

지난해 와세다 대학에 머물며 만난 일본 경제계 지도자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막강한 파워로 기업을 짓누르고 있던 22개 중앙부처를 과감히 절반으로 가지 쳐내니 그만큼 정부규제가 줄어들어 민간 부분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요즘 신문을 보면 연일 '자기 부처의 존립 당위성을 강조'하는 전면광고가 뜨고,모 부처는 직원일동 명의로 인수위 조직개편 방향을 비판하는 성명까지 냈다고 한다.이는 관료가 조직축소에 강하게 반발하던 일본에서도 없었던 이례적인 일로 참여정부 아래서 조직만 비대해진 것이 아니라 공직기강까지 풀어질 대로 풀어졌구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2008년 새 지도자를 맞는 국민의 바람은 간단명료하다.제발 경제를 살려 달라는 것이다.그런데 경제살리기는 그간 너무 비대해진 정부조직을 개혁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최근 경제 살리기에 성공한 일본,러시아에서 정부가 먼저 조직을 줄이자 민간 부분이 이에 따라 개혁을 했듯이,우리도 정부조직부터 솔선수범해 제 살을 빼지 않으면 공기업개혁과 경제 살리기의 물꼬를 틀 수가 없다.
 
이번 주에 정부개편안의 뚜껑이 열릴 것 같다.지난 대선에서 OECD수준으로 중앙부처 수를 줄이겠다고 국민과 약속했으니 아마 크게는 일본의 11개,적게는 영국의 17개 수준의 조직축소안이 나올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 좀 더 냉정하게 국민을 위한 정부개혁이란 점에서 기본인식을 같이해 볼 필요가 있다.첫째 일단 인수위의 개혁안이 나오면 공청회 등을 거쳐 모두가 '대화의 장(場)'에 들어가자.거기서 부처와 전문가 의견을 들으며 바람직한 개편안을 만드는 것이다.이는 관료들이 지금과 같이 신문에 성토문 비슷한 전면광고를 내며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부탁이다.둘째 어떤 개혁안을 만들건 5~6개 부처는 간판을 내려야 할 것 같다.사실 간판을 내릴 정부부처들의 가장 큰 항변은 자기 부처가 없어지면 해당 산업이나 분야가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이는 부처간판을 국민을 위한 조직이 아닌 자신들의 밥그릇으로 착각하는 부처이기주의의 극치다.일본에서 만화산업을 주관하는 정부부처가 없어 '닛폰 망가'(일본만화)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는 아이러니한 말이 있다.결코 부처가 간판을 내린다고 해당 산업이 홀대받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오늘날과 같은 산업 간 융합화 시대에 유사한 기능을 가진 부처를 통폐합함으로써 행정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정부조직법의 국회심의과정에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소위 '○○족(族)'집단의 집요한 반대다.'족 집단'이란 해당부처의 관료는 물론 그 우산아래 의존하는 각종 관련단체,협회와 정치적으로 이들에게 의존하는 정치인들을 말한다.예를 들어 일본에서 '농림족' 하면 농촌에 정치적 기반을 둔 자민당 의원에서 시작해 농민단체,관련 건설업체 등이 해당부처 관리와 아주 복잡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바로 이들 족집단이 의회에서 반대로비를 했는데,요즘 국내신문 광고에 해당부처 이름 아래 수십 개의 산하단체,협회 이름들이 줄을 잇는 걸 보면 우리 임시국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조직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그래야만 새로운 진용으로 출범하는 새 정부가 힘차게 경제 살리기에 나설 수 있다.그런데 소수 기득권자들의 반대 로비로 법개정이 총선 후 정기국회로 넘어간다면 가장 중요한 집권 첫해에 새 정부가 보다 효율적으로 경제 살리기에 매달릴 수 없을 것이다.물론 이때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국민들이다.
 

♤ 이 글은 2008년 1월 14일자 한국경제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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