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18 10:13:12
'이명박 경제'와의 결혼 조건
강석훈(한반도선진화재단 금융정책팀장,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오는 2월 말에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 공식적인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결혼식을 앞둔 남녀의 마음처럼 국민도 이명박 정부도 모두가 설레고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거는 기대는 하늘에도 닿을 만큼 드높기만 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결혼식을 앞둔 남녀가 동상이몽에 사로잡혀 있듯이 국민과 이명박 정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혼 전 남자가 하는 굳은 약속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약속이 신부의 손에 물을 안 묻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약속인지를 깨닫게 되는 데는 대부분의 경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더욱이 이번의 결혼약속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같이 있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단 5년간의 결혼 약속이다. 5년 후에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참으로 특이한 결혼이다.
이명박 정부와의 5년 결혼생활을 앞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향후 결혼생활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중요한 정부 업무 보고가 어느 정도 종료된 이 시점에서 인수위 활동에서 나타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즉 '이명박 경제'의 목표와 현실 그리고 정책 방향을 중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경제는 향후 10년 내에 완전한 선진국 안착(安着)이라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향후 10년이면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절대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향후 10년이면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에서 승패가 가려질 것이다. 향후 10년이면 남북 통일도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가 결혼조건으로 내세웠던 747약속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목표의 당위성만큼이나 목표의 실현방법과 실현가능성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완전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업 규제완화가 중요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대한 개입을 줄임과 동시에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야 한다. 단기적인 7% 성장이 아니라 7% 성장잠재력이 중요하고, 7대 경제대국이 아니라 7위 내의 국가경쟁력이 더욱 중요하다.
이명박 경제의 두 번째 사명은 한반도형 시장경제를 정립하는 일이다. 시장경제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한국과 한반도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한반도형 시장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볼 때 인수위의 통신비 인하압력은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당국자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통신비를 인하하겠다고 주장하지만, 20%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과거 정부주도의 권위주의 경제를 연상시킨다. 정치적인 이유로 시장원리가 무시되기 시작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구호가 허상에 불과해질 우려가 있다.
이명박 경제의 세 번째 사명은 공동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다. 이명박 경제는 복지확대와 평등한 소득분배를 지고지선(至高至善)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될 것이지만, 이를 터부시하는 일은 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의 공동체정책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명박 경제가 실용을 내세우지만, 이 부분만큼은 원칙을 세우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기를 잡아 주는 복지제도가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복지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명박 경제가 추진하였던 신용불량자 대사면은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신용불량자 대사면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복지원칙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지난 10여 년간은 타는 목마름의 시간이었다. 이제 향후 10년은 설렘이 현실이 되는 이명박 경제를 만나보고 싶다.
♤ 이 글은 2008년 1월 11일자 조선일보 [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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