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17 11:09:38
사실로 드러난 ‘세금 폭탄’
이인실(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자고로 세금을 잘 못 건드리면 견뎌낼 재간이 있는 정부는 없다. 과도한 징세행위가 저항을 넘어 혁명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는 세계 역사를 통틀어 셀 수 없이 많다. 돌이켜 보면 혁명은 이념이나 종교 등 거창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세금이 발단이 된 일이 많다.
미국의 독립혁명도 전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해진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 대표가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세금을 매기는 데 반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왕실의 극심한 사치로 악화된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해 지배층에 세금 부과를 시도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의 배경에도 세금을 둘러싼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도 세금을 둘러싼 삼정(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문란이 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도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로부터 여러 가지 명목으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가뭄이 들어도 면세해주지 않고 도리어 국세의 3배나 징수하면서 원성을 사게 되어 농민들이 참다 못해 궐기한 것이 아닌가.
멀리 돌이켜 보지 않아도 노무현정부의 대선 패배의 뒤에는 세금폭탄이 있다. 지난해 국민이 낸 세금이 국세 기준으로 정부가 당초 예산에서 추정했던 금액보다 무려 13조7000억원이나 더 많았다. 국세청이 지난해 징수한 153조1000억원은 2006년의 130조4000억원보다 22조7000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국민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는데 전년 대비 무려 17.4%나 증가한 금액이다.
세금폭탄이란 말이 실제로 입증된 셈이다. 국민 1인당으로 보면 28만원을 생각지도 않게 더 냈다. 4인 가족으로 치면 100만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정부가 살림을 꾸리는 데 필요하다고 해서 달라고 한 것보다 더 가져갔다는 이야기다. 세수목표와 실제 징수액의 차이는 불가피하나 13조8000억원이나 되다 보니 국민에게는 폭탄수준이란 말이 현실로 와 닿는다. 원래 세금은 거위 몸에서 털 뽑듯이 걷어야 한다. 거위가 자기 털을 뽑는지 마는지 모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게 뽑으면 거위가 펄쩍 뛰어 도망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걷힌 세목을 보면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교통세 등이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값을 잡겠다며 부동산세제를 고치기 전만 해도 2조∼3조원에 불과했지만 2006년에는 7조9000억원으로 급증하더니 급기야 2007년에는 11조3000억원이 걷혔다. 양도세는 세목 분류상 소득세지만 양도할 때만 세금이 부과되니 거래에 대한 세금이다. 거래세가 느니 거래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종부세는 그 전해의 부동산 가격 상승분에 과표적용률 상향 조정분이 합쳐져 심하게는 2∼3배씩 세대별 부담이 늘어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로서는 건전재정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어서 모자라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세금은 국가를 유지해나가기 위해 숙명처럼 부담해야 하는 평생 의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금’이라고 했다. 영국의 찰스 1세의 과도한 징세행위가 청교도 혁명으로 이어졌고 찰스 1세는 국민에 의해 처형을 당한 최초의 국왕이 되었다. 민의를 저버린 세금이 가져온 결과이다. 적극적인 감세정책을 펴겠다면서도 인기영합적인 사회복지 지출을 동시에 공약한 이명박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대국가에서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은 무덤까지도 따라온다는 세무서 직원 때문이 아니다. 세금이 교육 복지 환경 등 공공서비스를 향유하는 대가이자 우리가 복지사회 건설에 함께 참여하는 회비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쓸 것은 써야겠지만 정말 아껴서 써주길 바란다.
♤ 이 글은 2008년 1월 14일자 세계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번호 |
제목 |
날짜 |
---|---|---|
306 | [신도철] 성장동력 재충전이 시급하다 | 08-01-28 |
305 | [유호열] 북핵해결 조급증 벗어나라 | 08-01-25 |
304 | [이용환] 개혁의지 미흡한 정부조직 개편(안) | 08-01-24 |
303 | [안세영] 族집단과 닛폰 망가 | 08-01-22 |
302 | [이용환]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 08-01-18 |
301 | [김형준] 국회 인적 청산에 대한 단상 | 08-01-18 |
300 | [강석훈] '이명박 경제'와의 결혼 조건 | 08-01-18 |
299 | [조영기] 신대북정책의 방향 | 08-01-17 |
298 | [김영봉] 10만원권의 '얼굴'과 자학사관 | 08-01-17 |
297 | [이인실] 사실로 드러난 ‘세금 폭탄’ | 08-01-17 |
296 | [이인호] 보수, 반동, 진보, 급진 | 08-01-17 |
295 | [이창원] 정부 조직개편의 성공 요건 | 08-01-11 |
294 | [홍사종] '패자 부활이 왕성한 사회' | 08-01-10 |
293 | [현진권] 시장친화적인 보육정책 | 08-01-08 |
292 | [강경근] ‘이명박 특검법’은 위헌이다 | 08-01-08 |
291 | [최양부] 농협도 선거혁명 이뤄야 | 08-01-02 |
290 | [이인실] 국가경쟁력강화특위에 거는 기대 | 08-01-02 |
289 | [이홍구] 잊을 수는 없지만 잊기로 하자 | 08-01-02 |
288 | [유호열] 새정부 대북정책 과제와 전망 | 07-12-28 |
287 | [남상만] 한국 관광 르네상스를 기대한다 | 07-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