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11 09:17:23
정부 조직개편의 성공 요건
이창원(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위원,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정부의 구조는 20주년 독립기념일마다 폐지하고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여년 전에도 정부 조직 구조의 수명이 20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정부 조직 구조가 세상의 흐름과 요구를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명언이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노무현 정부가 ‘선 지방분권, 후 정부혁신’을 강조했지만, 지방분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앙정부 조직 개편도 땜질식으로 처리한 것은 국가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너무 아쉽다.
‘경제 이슈’를 선점하면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차기 정부가 인수위부터 정부 조직 개편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행정 수요자인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다는 측면에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특히 지식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산업 융합, 기술 융합, 서비스 융합 등의 현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 부처의 형태를 ‘대부처(大部處)’로 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개편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부처간 통합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융합(convergence)’을 기초로 해야 한다. 14년 전 김영삼 정부 때 건설부와 교통부를 통합해 만든 건설교통부와 10년 전 김대중 정부 때 내무부와 총무처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행정자치부에서 아직도 “어디 출신은 승진이 늦다” “같은 부처 출신끼리만 점심을 먹는다”는 등의 이야기가 들린다. 이는 ‘업무와 기능의 재설계’에 기초한 부처간의 ‘화학적 융합’이 아니라, 사실상 두 부처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 수준의 통합이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통합이 예상되는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의 후속 작업에는 통합 부처에 대한 철저한 기능·업무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둘째, ‘대부처’로 정부 조직의 구조화를 추구할 경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적정한 ‘통제의 폭’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통제의 폭’이 클 때 발생하는 것이 ‘공룡부처’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내부 조직에 대한 통제가 부실해져 지난해 연금 납부 기록 5000만건이 누실되는 사건이 발생, 참의원 선거 결과 여당인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그러잖아도 위태롭던 아베 정권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켰다. 잘못된 정부 조직 개편이 정권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셋째, 조직의 통폐합이 이뤄지면 통합 이전 공통업무 근무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잉여인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활용계획을 주도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준비계획이 없이 통·폐합이 진행될 경우 이들의 불안이 전체 공직사회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고, 그렇다고 졸속적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 부여하게 될 경우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넷째, 중앙정부의 조직 개편은 지방분권 및 정부 기능의 민간 이양과 함께 이뤄져야 하고, 특히 인사제도의 과감한 개편도 뒤따라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는 “접시를 닦다가 깬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안 닦는 것은 용서 못한다”는 인사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를 통해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은 절대 대우받지 못하는 ‘세계 일류 서비스 정부’가 실현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차기 정부는 경제 성장이든 양극화 해소든 정부가 직접적으로 관여(make it happen)하지 않고 이러한 기능이 작동될 수 있는 틀을 제공(let it happen)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러한 정부가 되어 기업투자 활성화, 경기회복, 일자리 창출, 복지의 확대가 동시에 달성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2008년 1월 10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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