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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종] '패자 부활이 왕성한 사회'
 
2008-01-10 09:11:18

'패자 부활이 왕성한 사회'


홍사종(한반도선진화재단 문화정책팀장,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지금은 일본에서 격투기 선수로 활약 중인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산시청 소속 유도선수 '추성훈'이다. 재일교포 4세였지만 고국의 대표선수가 되겠다는 큰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이 젊은이에게 고국의 유도계는 너무나 냉담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재일교포인데다 유도명문 Y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이없는 판정패를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특정 대학 텃세에 절망한 그는 끝내 일본에 귀화해서 이름을 바꾸고 일본 유도 국가 대표선수가 됐다. 이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와 다시 만나 보기 좋게 금메달을 일본에 안겨줬다. 그가 그토록 호소해 왔던 패거리문화의 장벽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해준 것이다.
 
비단 유도계뿐일까. 교육계, 학계 심지어 실력 하나만 봐야 되는 문화예술계에 이르기까지 학연 패거리의 장벽은 크고 높다. H대, S대 출신이 아니면 입신조차 어렵다는 복마전 미술대전에서 설움을 삭혔던 추성훈과 같은 화가는 아마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학연은 아름다웠던 학창 시절 뒤에 숨은 묘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곳이다. 학교 다닐 때 대부분 일면식도 없던 출세한 동문에게 학연의 끈을 빌미로 유대를 돈독히 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 그가 권력의 실세라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이 경우 동문조직까지 전부 가세하여 그를 중심으로 한 유대의 소중함을 서로에게 알린다. 서로 밀고 끌어서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지연도 크게 봐서 이와 다름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음식점 등에서 예외 없이 펼쳐지는 향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출세한 고향 사람들과의 인사를 통해 긴밀한 유대를 꿈꾼다. 지역 정치인의 이해와 사람들의 소망이 묘한 결합을 이루며 펼쳐지는 행사의 주제는 또한 우리 지역이 뭉쳐서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렇게 뭉쳐진 패거리 모임의 특징은 패거리 안의 사람들의 이상과 뜻, 인격과 품성이 어떤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들끼리만 뭉쳐서 만든 권력을 나누고 외부를 향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당선 일성 중 귀에 들어오는 한 마디는 '패자부활전이 왕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선자나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본의든 아니든 이런 패거리사회의 볼모가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는 바로 이 패거리문화의 자양분 속에서 그 몸집을 불려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패자부활전의 전제는 바로 이러한 패거리사회의 청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뜻이 다른 개인들이 서로의 이해를 감추고 학교 혹은 지역이라는 깃발 아래 묵계로 뭉쳐서 가는 세상의 끝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얽매였던 이런 패거리의 연(緣)으로부터 될 수 있다면 멀리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는 세계화와 실용주의라는 당선자의 정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하는 '동인(同人)사회'가 바람직하다.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심화된 '패거리사회'를 정치인들 스스로 되돌려 놓아 야 한다.
 
동인사회는 열린 미래 사회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시대 우리의 생존과 국가 선진화를 위해서도 빠르게 도달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 이 글은 2008년 1월 9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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