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4 08:59:40
‘주택 정치’가 아닌 ‘주택 정책’을
김경환(한반도선진화재단 부동산정책팀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택정책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은 현 정부의 정책과는 크게 다르다. 현 정부는 시장을 불신, 각종 규제를 남발하는 등 주택시장의 자율적 역할을 철저히 무시했다. 버블세븐 지역 등 특정 지역과 6억원 이상 주택을 가진 사람만을 겨냥한 정책을 남발했다. 그래서 주택정책은 없고 ‘주택정치’만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반면 새 정부는 서민주택 공급에만 직접 개입하고, 중산층 주택수요는 시장을 통해서 충족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현 정부는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세제(稅制)와 금융, 거래규제 등 수요억제에 역점을 두었지만, 새 정부는 관련 규제를 어느 정도 완화,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는 현 정부 내내 지속된 수요억제냐 공급확대냐의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집값 안정 효과 측면에서는 수요를 억제하든 공급을 확대하든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세제 등을 통한 수요억제 정책만으로는 소득증가에 따른, 더 넓고 좋은 집을 원하는 국민들의 자연스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었기 때문에 주택 공급 증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나 1인당 주거면적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갖춘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매년 전국적으로 얼마의 주택을 짓겠다는 식의 접근은 이제 곤란하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많은 주택이 지어졌지만 수요를 무시한 정책으로 서울과 수도권에는 공급부족을, 지방에는 대규모 미분양을 초래했다.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 매력 없는 집을 짓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다. 서울 도심의 재개발 재건축을 새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새 정부 주택정책 방향은 대체로 옳지만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제도를 바꾸기가 더 어렵다는 걸 알아야 한다.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소득세 감면, 재건축 규제 완화, 분양원가 공개 및 분양가 규제 범위 조정 등 새 정부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지난 몇 년간 여야 합의로 제정 또는 개정된 법률들을 바꿔야 한다. 1가구 1주택 보유가구에 대한 감면은 입법단계에서부터 수차례 논의되었지만 소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우려한 여야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법률개정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새로운 정책을 펴려면 관련 이해 집단에 대한 설득도 필요하다. ‘선진국형 보유세’라고 참여정부가 애써 홍보해 온 종합부동산세의 징수액이 3조원 가까이로 늘어나면서 그 세수를 분배받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혜택도 커졌다.
더 큰 과제는 공급확대의 효과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정책을 발표하면 일시적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흘러 주택 공급이 실제로 늘어나는 시점에 가야 가격이 안정된다. 주택 공급이 예정대로 확실하게 늘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이 시장의 불안심리를 조기에 진정하는 길이다.
따라서 새 정부는 선거공약을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그 실행 계획과 일정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제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시장의 기대를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
끝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수준을 높이는 일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러나 국민임대주택을 매년 10만호씩 공급하는 현 정부 정책이 최선의 정책인지에 대해서 새 정부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당선자가 공약한 신혼부부에 대한 저가 주택공급 역시 기존의 서민주택 공급계획과 상충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12월 24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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