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4 08:50:15
외교, 자강(自强)과 동맹(同盟)을 두 축으로
모종린(한반도선진화재단 세계전략팀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는 앞으로의 5년은 동아시아 패권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 패권경쟁의 징후는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 북한과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 중국을 염두에 둔 미국·인도·일본의 3각 연대 등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경쟁은 우리에게 잠재적 위협이다. 동북아 국제관계에 법칙이 있다면 동북아 패권경쟁은 반드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수반한다는 것이 그 법칙일 것이다. 제국주의 경쟁이 벌어졌던 20세기 초와 냉전이 시작되던 20세기 중반이 그렇다. 이러한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동아시아 패권경쟁이 패권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것이 이명박 외교의 최우선 과제이다.
패권전쟁 방지를 위한 한국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지역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정체성 구축과 지역 협력의 확대를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힘만으로 동아시아의 패권경쟁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패권국가의 등장을 원하지 않는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 이명박 외교가 한미동맹의 강화로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한미동맹 강화의 의미와 방향도 새로워져야 한다. 과거와 같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도울 때는 돕고 비판할 때는 비판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한반도의 안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여력이 없다.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안보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동아시아 지역 안보에서도 한국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일정 수준의 자주국방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공격이 적지 않은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경고하고 유사시 동맹국에 유용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의 국방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적정 국방예산 규모가 얼마인지에 대한 합의는 없으나 적어도 미국과 중국이 현재 지출하고 있는 GDP의 4%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의 전략과 능력을 과다하게 신뢰하는 것도 금물이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서는 일관성과 신뢰성을 찾기가 어렵다. 대북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올해 초 아무 예고 없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포용정책으로 전환했고 이로 인해 동맹국과의 장기적인 공조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명박 외교 성공의 또 하나의 관건은 정책수단의 유연성이다. 과거 10년의 햇볕정책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수단과 목표의 혼돈이었다. 햇볕정책은 한반도 안보와 통일의 수단으로 시작되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햇볕정책 자체가 목표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실용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유연한 정책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무원칙주의로 변질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실용주의는 확고한 원칙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신뢰하는 정부에만 실용주의를 추진할 수 있는 재량권을 허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국가 정체성 수호, 주요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적 동의, 정책과정의 투명성 등 외교의 기본적 원칙을 준수하는 정부만이 얻을 수 있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자강(自强)과 동맹(同盟)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이념에 충실하면서 특유의 뚝심과 실용주의를 적절하게 발휘한다면 동북아 패권 경쟁의 위기에서 오히려 존경받고 강력한 새로운 한국 외교의 전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12월 24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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