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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정부 비대증’ 누가 고칠 것인가
 
2007-12-18 09:23:17

‘정부 비대증’ 누가 고칠 것인가


안세영(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경쟁력 팀장, 서강대 국제대학원교수)


화주목사 곤장 100대, 진성현감 볼기 80대. 세종대왕 즉위 후 70여 명의 지방수령들이 백성을 굶주리게 했다는 죄목으로 호되게 곤장을 맞았다. 이 지경이니 ‘관리 못 해먹겠다’는 푸념이 지방 수령·방백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세종의 통치철학은 확고했다. 관리가 괴로워야 백성이 편하지 관리가 편하면 백성이 고달프다는 것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 일본, 러시아 등 요즘 잘나가는 나라들을 보면 한결같이 정부조직을 축소했다. 십년 불황의 터널에서 일본경제를 탈출시킨 고이즈미 총리는 22개 중앙부처 조직을 절반 가량으로 줄여버렸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23개 부처를 14개로 줄이고 공무원을 30% 이상 감축했다. 최근 취임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공부문 개혁을 위해 기득권 세력과 거의 전면전을 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들 지도자들이 취임하자마자 한결같이 정부개혁의 칼을 빼드는 이유는 비대해진 관료조직이 단순히 예산을 축내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규제와 개입을 일삼으며 민간부문의 숨통을 죄기 때문이다.
 
내일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당선된다. 누가 되든 새 대통령은 국정쇄신의 첫걸음을 참여정부 최대 업적(?)인 ‘정부비대증’을 고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미국 14개, 일본 12개보다 훨씬 많은 22개 부처를 12개로 대폭 줄여야 한다.
 
우선 산업융합으로 그 의미가 사라진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사이의 벽을 허물어 산업과학부로 만들고, 교육부와 노동부를 합쳐 교육노동인적자원부로 만들되 신입생 선발 등 학사 기능은 과감히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 또한 건설교통부, 환경부, 해양수산부의 물류기능을 합쳐 국토환경부를 만드는 한편 보건복지부와 여성부를 보건사회여성부로 단일화시킨다. 묻지마 퍼주기로 말이 많은 통일부는 외교정책의 큰 틀 속에서 남북대화 등 통일관련 고유 업무에만 전념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10여 개의 부처를 줄이면 상당수의 고위직이 줄어든다. 이와 함께 100만명에 육박하는 공무원들의 수를 무능 공무원의 철밥통을 깨는 계급정년제의 도입, 자연이직의 일부만 충원하는 방식 등에 의해 향후 5년간 적어도 10% 이상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단순한 조직축소나 인원감축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새 대통령과 함께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국가 발전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며 예산권을 가지고 과감한 규제완화를 주도해 나가도록 기존의 기획예산처와 재경부의 일부 기능을 합쳐 전략개혁원을 만드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 살리기의 성패가 달린 규제완화를 현재의 어정쩡한 위원회체제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관료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기득권을 안 놓으려 발버둥치는 관련 부처와 이를 깨고자 하는 전략개혁원 사이의 힘겨루기로 만들고 후자에 힘을 실어주면 된다. 여기에 대해선 기존 국무총리실 기능과 중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책임제를 버리지 않는 이상 국정은 대통령 비서실과 부처를 연결하는 양대 축에서 신속히 이루어져야지 참여정부와 같이 어중간하게 국무총리실을 키워 놓으면 옥상옥(屋上屋) 역할만을 할 뿐이다.
 
정부개혁의 성패는 차기 정부 국정 장악능력의 척도가 되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외형적 조직 개편뿐만 아니라 새로 탄생하는 부처의 운영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특히 여러 부처를 합쳐 놓으면 외환위기 때 재경원의 쓰라린 경험에서 보듯이 장관의 통솔 영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어지간한 정책결정은 장관까지 가지 않고 차관 선에서 끝나도록 복수차관제를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개혁을 하며 공무원을 적대자(敵對者)로 몰아붙여선 절대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잘못은 정권이 저지른 것이다. 정부조직과 인원은 줄이되 공무원 조직이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되어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2007년 12월 18일자 조선일보 [시론]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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