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유호열] NLL 우회한 ‘평화협력’은 사상누각
 
2007-12-18 09:20:59

NLL 우회한 ‘평화협력’은 사상누각


유호열(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사흘 동안 열렸던 제7차 남북 장성급회담이 지난 14일 끝났다. 회담 첫날 남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역에서의 통신·통관·통행 등 3통을 위한 군사보장합의서를 채택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 문제에 대해서는 회담 이튿날과 마지막날까지 양측이 서로 팽팽히 맞서 성과없이 회담이 종료됐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직결되는 사항으로, NLL에 대한 남북의 입장 변화가 없이는 해결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제7차 남북 장성급회담이 절반의 성공에 그친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하면서도 정작 핵심 사항인 NLL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담 직후 정상선언이 발표됐을 때에도 NLL 문제에 대한 언급없이 평화협력지대 설치를 합의한 것은 결국 합의를 위한 합의일 뿐, 구체적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란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또한, 추후 열릴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관련 사항들이 논의된다고 했을 때에도 남북 정상 간의 이면합의나 일방적 양보가 없는 한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봤는데 역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NLL은 지난 50여년 동안 실질적으로 해상에서의 남북한 간 군사분계선 기능을 해왔다. 그리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합의한 대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유지돼야 할 남북간 해상 경계선이다. 따라서 이처럼 막중한 사안이 하루아침에, 그것도 정상회담이나 국방장관회담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실무 회담 격인 장성급회담을 통해 전격적으로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의 남북정상회담,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보여준 김장수 국방장관의 자세와 우리 군 당국의 입장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장성급회담에서 우리 대표단의 적절한 대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서해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협력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재천명돼야 한다. 육상에서의 군사분계선이 6·25전쟁의 결과였듯이, 해상에서의 경계선 역시 참혹한 전쟁의 유산이다. 이는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그 기능을 해왔다.
 
남북한은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상의 합의대로 남북한 간 항구적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NLL을 유지하되, 남북한이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력의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 출발점이 한국이 제시한 NLL을 기점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남북 양측이 공동어로구역을 시범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북한 군 당국도 두 차례 무력충돌과, 이어진 각급 회담을 통해 NLL과 관련한 우리의 입장 및 의지, 그리고 역량을 잘 알게 됐다. 아울러 우리의 새로운 제안이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또 다른 형태의 군사적 신뢰 구축 모델이 될 수 있으며 앞으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을 것이다.
 
다만, NLL의 명시적 재인정 또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경계선 철회 등과 같은 중차대한 사항은 군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오직 김정일 위원장의 특단의 결단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해 평화수역이나 공동어로구역 설정 문제 등은 차기 정부 아래서 추진될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재상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12월 17일자 문화일보 [포럼] 에 실린 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86 [김경환] ‘주택 정치’가 아닌 ‘주택 정책’을 07-12-24
285 [모종린] 외교, 자강(自强)과 동맹(同盟)을 두 축으로 07-12-24
284 선진·화합의 열차로 갈아타자 07-12-21
283 [김영봉] 당선자는 싱가포르를 보라 07-12-20
282 [안세영] ‘정부 비대증’ 누가 고칠 것인가 07-12-18
281 [유호열] NLL 우회한 ‘평화협력’은 사상누각 07-12-18
280 [최상철] 오기의 대못질을 멈춰라 07-12-17
279 [김승욱] 사회 양극화 해소 07-12-13
278 [안세영] 상대편 내분 가능성을 파악하라 07-12-11
277 [이인실] 제대로 된 정책연구소 만들자 07-12-10
276 [강경근] 이제부터라도 정책선거로 가야 07-12-08
275 [조영기] 남북총리회담 그리고 과제 07-12-08
274 [손태규] 자유언론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07-12-06
273 [김형준] ‘좋은 유권자’가 되는 길 07-12-05
272 [김원식] 개혁해야 할 건강보험 시스템 07-12-05
271 [최양부] ‘농민을 위한 농민의 조직’ 농협이라고? 07-12-04
270 [강석훈] 후보들의 장밋빛 약속을 고발한다 07-12-03
269 [강경근] 대선의 정치과정,법치로 가야 07-12-03
268 [이인호]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은 현대사(現代史) 다시 쓰기부터 07-11-28
267 [이창용] 국민연금 운용기관 복수화하자 07-11-27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