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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제대로 된 정책연구소 만들자
 
2007-12-10 09:47:57

제대로 된 정책연구소 만들자


이인실(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정책연구소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대선에서 정책경쟁은 없고 ‘정치 공학’만 난무하는 것은
민간·NGO 연구소들 제 역할 못하는 탓
국가전략 차원에서 정책공동체 키워나가야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대선(大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후보 검증 바람은 비방 일색으로 치닫고 정책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선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대선은 심각하게 위태로운 선거다. 이합집산을 거듭한 범여권 후보들은 정책 개발을 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적어도 선거일 6개월 전에는 대통령 후보군이 정리가 됐고, 3개월 전에는 정책공약이 나왔다. 이번에는 대선이 코앞인데도 후보군이 정리가 안 되고 있다. 또 정당 후보가 그 정당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정책을 내는 이상한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다. 좌파든 우파든 정당의 이념과 노선에 기반을 두고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데 정책도 없이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정치공학’만이 난무하고 있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있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에 대한 공방으로 날을 샌다. 그나마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란 것도 방향만 있고 재원 마련도 불투명하고 실천계획은 더더욱 없다.
 
사실 국민이 열망하는 ‘강중국가(强中國家)’로 한국이 다시 태어나려면 지금 같은 대선기간이 치열한 논쟁을 거쳐 국가창출전략을 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정책논쟁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정치 환경을 탓하며 매니페스토가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실망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책 환경도 돌아다 보아야 한다.
 
과거에는 강력한 리더십에 의한 행정부 주도의 정책이 주류를 이뤘다. 1987년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책형성 과정에 비정부단체(NGO), 이익단체, 기업 등 민간부문과 정치권, 특히 국회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어설픈 정책 논쟁으로 인해 오히려 정책이 인기영합주의로 흐르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걸맞은 경제정책 공동체(policy community)가 형성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환경이 받쳐주더라도 우리에겐 정책에 대해 논의할 만한 충분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행정부 주도의 고도 성장경제를 가져가다 보니 정부출연연구소가 상대적으로 비대하고, 이들 연구소가 아직 정책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민간부문에서 대표적인 것은 대학에 있는 연구소인데 많은 경우 정책에는 관심이 적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정책과 관련된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권위,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한 민간연구소가 아직 없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정책 수행에 목소리가 커진 민간의 NGO부설 연구소도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빈약한 면이 없지 않다. 외국계 및 국내 컨설팅기관에서 정책제안을 하기도 하나 이 또한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책의 중립성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또 행정부, 대학, 국회, 민간기업, 해외, 시민사회 등 정책지식의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들 간에 인적·지적 교류가 많지 않고, 대부분의 연구가 개별적·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정 정책 사안에 대해 다양한 지식과 방법을 결합한 학제적 연구도 부재한 상태다. 게다가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과도하게 해외로부터의 정책연구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전체가 커다란 정책 실험장이 된 느낌이다.
 
미국의 경우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 연구소와 같은 유명한 연구소들은 모두 완전한 민간조직으로서 우리나라와 같이 정부산하단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민간연구소와 대학에서 기초적인 이론 연구와 더불어 정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정부의 정책형성에 도움을 준다. 학자층이 두꺼운 만큼 지식과 이론을 정제하고 정부정책이 잘못된 길에 들어설 가능성을 줄여주는 학계의 기능이 잘 발달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정책공동체 구조가 매우 빈약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정책선거를 할 의지가 없다. 대선 주자들도 의지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으로 공약을 던지면 표 계산도 복잡해지고 당선될 때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일부러 어정쩡하게 발표할 유인이 매우 크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책을 논할 수 있도록 정책공동체를 공고히 하고 정책토론의 장을 더 만들어야 한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일수록 자기 지지율이 낮아질까봐 TV 토론을 피하는 경향이 높다. 후보자들에게 자기 정책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게 하지 말고 유권자들이 정책 사안에 대한 후보자 간 차이점을 알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보여주어야 한다. 후보들이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 참여자나 참모들을 공개해야 한다. 정책 생산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현실 검증을 통해 정책선별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견,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검증하여 도태시킬 수 있다.
 
정책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정책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선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여 새 진영을 짜는 향후 1~2개월이 적기다.
 
 
♤ 이 글은 2007년 12월 8일자 조선일보 경제면 [칼럼 inside]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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