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6 13:27:31
새벽 인력시장에서 느끼는 민생(民生)
이창원(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위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이 나라의 진정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대선 후보는 당장 내일 새벽 서울 창신동 인력 시장이나 영등포시장에 나가보시기 바란다. 정규직 밑에 비정규직, 그 비정규직 밑에 일용직들이 있는데 이들이 새벽부터 자신에게 일당을 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처참할 정도다. 보통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운이 좋아 5시30분쯤 일거리를 얻고 10시간쯤 일하면 받는 일당이 5만~7만원. 소개비와 밥값 빼고 나면 4만~5만원이 남는다고 한다. 이렇게 일하는 날이나마 건설일용직의 경우 한 달 평균 20일이라도 되면 거의 기적이라고 한다. 환갑 다 된 나이에 30 중반 현장 소장에게 반말 듣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도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참아야 한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지난 6월에서 8월까지 국무회의가 열리는 화요일마다 ‘8주 연속 공무원 증원안’을 통과시키는 해외토픽감 뉴스를 만들었다. 이런 정부가 지난 20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한덕수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또다시 공무원을 582명 늘리는 정부 직제 개정안을 의결했다. 올해 들어 늘어난 공무원 숫자만 1만3412명이고, 지난 5년간 560여 차례의 조직개편을 통해 증원된 공무원은 9만6512명에 달한다.
‘새벽 인력시장’에는 일당 5만원, 월 100만원을 벌기 위해 오늘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정부중앙청사에서는 매주 ‘화요일 공무원 증원 잔치’를 벌여 당장 내년에만 그 공무원들을 먹여 살리는 데 가구당 200만원 정도의 세금을 내야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금년 6월 현재 일용직노동자가 자그마치 229만명이다. 임시일용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숫자는 올해 3월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무려 55.7%인 876만명이다. 이렇다 보니 1인 가구를 포함한 전국 가구의 상대빈곤율은 시장소득 기준 18.5%로 결국 국민 5명 중 1명 정도가 ‘빈곤자’인 셈이다. 이러한 ‘상대빈곤율’은 관련 통계가 나온 1999년 이후 최고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정부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 재정 지출을 늘렸고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을 급증시켰다. 이 정부 출범 후 공무원 인건비는 해마다 평균 7%씩 늘어 5년 만에 6조6000억원이 증가하였고, 국민들의 세금증가율은 소득증가율(22%)의 2.6배나 된다. 국가채무도 2배 이상 증가했고, 조세부담률도 OECD회원국 중 터키 다음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나랏빚이 올해보다 38%나 급증한 50조원에 육박한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解弛)도 이미 그 도를 넘었다. 이 정부에서 공기업의 빚이 2006년 말 현재 295조8000억원으로 101조원(52%)이나 늘었지만, 500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경영실적’ 성과급을 300%씩 나눠 준 공기업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체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고위직 공무원 수를 증가시켰다. 과거 정부 시절에는 서기관 자리 하나만 늘려주어도 “조직에 숨통을 열어 주었다”라고 호들갑을 떨던 공무원들에게 장·차관 자리를 무려 30개 늘려주고 행정부 3급 이상 고위공무원 자리를 248명 증가시켜 주었으니 이 정부는 가히 ‘관료 만세 공화국’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정권 담당자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숙제는 무엇인가. 후보들은 새벽 창신동이나 영등포의 인력시장에 나가 직접 느껴보기 바란다. 노무현 정부의 빚잔치로 늘어난 세금 내느라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국민들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만나 이들의 울분을 풀어주고 허리를 펴게 할 진정한 대책이 무엇인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11월 26일자 조선일보 [시론]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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