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의 칼럼입니다
반도체처럼 투자와 회수 기간이 긴 산업에서 한국 반도체의 성공은 선대 경영인들의 과감한 투자와 임직원들의 끊임없는 기술 혁신이 만들어낸 성과다. 1985년 플라자합의와 이듬해 미·일 반도체 협정도 우리가 일본을 추월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최근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D램은 약 2년,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약 3년으로 좁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CXMT와 YMTC를 전폭 지원한다. 며칠 전 CXMT는 차세대 고집적 D램 기술의 개발 성과를 공개하고 서버용 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첨단 HBM의 경쟁력만으로 중국의 전방위 추격에 대응할 수 있을까.
미국은 네덜란드 ASML의 첨단 노광장비 수출까지 제한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제재는 중국의 소재·장비 국산화와 공급망 자립을 재촉한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인텔의 지분을 확보하고, 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에는 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 국가가 적극 지원한다. 반면, 우리는 산업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과 장기 자본 공급 체계를 미처 갖추지 못했다.
중국은 경쟁자인 동시에 한국 반도체의 생산기지다. 삼성전자는 시안(西安)에, SK하이닉스는 우시(無錫)와 다롄(大連)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이들 공장은 가동 중이지만,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로 첨단 공정 전환과 증설 투자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중국의 시장을 활용하되 첨단기술의 주도권은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성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는 반도체 성장 자금이다. 중국은 2014년 ‘대기금(大基金)’을 출범시켜 반도체에 국가 자본을 집중했다. 2024년에는 1, 2기에 이어 약 3440억 위안(약 68조6200억 원)의 3기 대기금까지 조성했다. 중국 지방정부도 투자 경쟁에 뛰어들어 국유은행의 금융 지원까지 동원한다. 반면, 우리는 반도체 투자자금 조달을 개별 기업의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정부는 반도체 초과 세수로 미래대응기금을 마련했지만, 기존 일반회계 사업까지 떠안으면 반도체 산업 지원 효과는 반감된다. 기금은 반도체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 소재·장비 산업에 집중하고 금융·세제 지원을 패키지화해 장기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호남반도체와 관련해 정부는 전력·용수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정교하고 실행 가능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팹 건설을 서두르더라도 정치적 일정에 쫓겨 경제성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인재전쟁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외 핵심 인재들을 막대한 성과급 패키지를 동원해 영입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인재도 그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기술 유출과 일부 인력의 조기 퇴출 논란도 불거졌다. 우리 기업들은 집단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와 경직된 노동제도로 핵심 인재에 대한 차등 보상과 장기근속 유도에 제약을 받는다. 핵심 인재에게 장기 주식 보상형 성과급을 확대하고, 이직 시 미귀속 주식이 소멸되도록 할 수 있다.
셋째는 노사관계와 정책의 지속성이다. 중국의 공회(工會)는 당과 정부의 틀 안에서 운영돼 우리와는 노사관계 구조가 다르다. 물론 우리 노사관계가 중국식 국가 통제 모델을 따를 순 없다. 그렇다고 장기 투자가 노사 갈등에 발목 잡히는 구조로는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다. 노동 관련 법·제도는 첨단산업의 장기 투자와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노동 관련법 개정을 메가특구특별법 관련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만 맡겨서는 구체적 성과 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놓칠 수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면한 글로벌 변수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다. 미국의 수출 통제는 중국의 추격을 늦춰줄 뿐 한국 반도체를 영원히 보호하진 않는다. 그새 초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안일하게 대응해 반도체마저 중국에 추월당하면 우리 경제는 흔들리게 된다. 기업은 투자와 혁신을 주도하고 국가는 이를 뒷받침하도록 산업 맞춤형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정책은 경제안보 관점에서 자본·인재·노사관계·인프라를 아우르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반도체 경쟁력은 기술을 넘어 국가 경제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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