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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경제] 이 시대 巨人이 꿈꾼 나라와 遺産...爲公 박세일과 한선재단
 
2026-10-07 09:48:40
개인적으로 이론에 치중하는 순수 학자보다 학문과 방략(方略), 실천을 두루 갖춘 경세가(經世家)에 관심이 많고, 흠모하는 편이다. 경세가란 학문과 정책을 동시에 담당하는 사람, 전통사회 사대부와도 같은 존재를 말한다. '뜻을 이룰 상황이면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학문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조선시대의 삼봉 정도전,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 다산 정약용이 경세가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모름지기 깨어있는, 실천적인 지식인 말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FKI타워(옛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2층 사파이어홀에서 열린 한반도선진화재단(이하 약칭 한선재단)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장에 다녀왔다. ‘이제는 문명화(文明化)로, 다 함께 선진문명국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날 모임은 국민의례에 이은 박재완 한선재단 이사장의 환영사, 정의화 전 국회의장 박수영 의원(국민의힘) 김진현 한선재단 고문(전 과기부장관)의 축사, 창립 20주년 기념영상, 케이크 커팅 순으로 1부행사가 진행됐다. 이어 2부 행사로 ‘선진문명국가의 길-MZ세대가 묻고 저자가 답하다’는 주제로 5명의 발표자가 각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자강 통일의 길, 번영과 혁신의 길, 조화로운 공동체의 길, 인구위기 극복과 세대 상생의 길 등을 제시했다.

‘성년(成年)’에 해당하는 창립 2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한선재단이 갖는 의미와 가치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큰 공명(共鳴)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인지 행사장 분위기는 시종 진지하고 열기가 넘쳤다. 뭣보다 한선재단의 오늘을 있게 하는데 자신의 전부를 오롯이 바친 이 시대의 한 거인(巨人)을 기리는 마음이 간절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위공(爲公) 박세일(朴世逸, 1948~2017). 이 시대에 그만큼 ‘선진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꿈꾸고, 고민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호(雅號)로 위공(爲公)을 쓴 것부터 범상치 않다. 좌우명으로 ‘천하위공(天下爲公, 원전 ’大道之行也·대도지행야 天下爲公-예기<禮記>가 말하는 공자의 이상적인 대동세계를 뜻함)’을 삼은 데서 알 수 있듯, 선생의 한평생 화두와 논제는 ‘선진 대한민국’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터전이 바로 ‘선진 대한민국’의 나침반이자 산실(産室), 한반도선진화재단(韓半島先進化財團, Hansun Foundation for Freedom & Happiness). 그의 주도로 2006년 9월에 창립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민간 싱크탱크이며, ‘공동체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한 ‘지성의 광장‘이 탄생한 것. 위공은 2013년까지 7년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조직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이 단체에서는 ‘선진화 정책운동’, ‘선진화 교육운동’, ‘선진화 공동체운동’을 통해 세계화·자유화·공동체 개혁을 지원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선진화(先進化)를 달성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한선재단의 활동상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분과별 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책 세미나 및 포럼, 아카데미 운영, 청년·시민 대상 교육, 리포트·도서 발간, 언론 기고 및 입법 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펴왔다. 지금까지 나온 주요 도서만 줄잡아 40여 권에 이른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국가재창조 한반도통일 일류문화국가 정부개혁 미래세대 위한 방안 등 거대담론을 비롯해 통일 국방 북핵(北核) 교육 재정·금융 정책 지역발전정책, 복지, 주택, 부동산, 리더십, 페미니즘 갈등에 이르기까지 가히 전 분야를 아우른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와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1973년 설립)을 떠올리게 한다.위공 박세일은 일찍부터 남달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학하는 법대생이면서도 사법고시 대신 사회적 격차 완화와 노동자의 인권 개선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노동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서울 법대에서 법경제학을 개설해 후배들을 가르쳤다.

강단에서 제자들에게 판·검사보다 행정부 공무원으로 ‘위국헌신(爲國獻身)과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실천하라고 독려했다. 이에 선생의 뜻을 좇아 행정고시를 거쳐 정부에서 일한 제자만 수십 명에 이른다. 위공은 각계의 지성들을 모아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세워 정부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대안도 함께 제시하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한 노력은 ‘문민정부’가 1993년 전격 시행한 금융실명제와 1995년 도입한 부동산실명제의 초석이 됐다.

위공은 대학에서 법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정당 국민생각 대표가 그가 걸어온 궤적이었다. 정치인 박세일에게는 영예와 좌절이 공존했다. 그러나 지식인 박세일이 발표한 ‘선진화론(先進化論)’은 우리나라 보수의 국가 비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중론(衆論)이다.

9년 전 세상을 떠난 박세일이 남긴 3부작이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창조적 세계화론'(2010), '선진 통일 전략'(2013)이다. 이 가운데 근간을 이루는 선진화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우리 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가 새로운 국가목표가 돼야 한다는 데 있다. 선진화론을 떠받치는 두 중심 개념은 '공동체 자유주의'와 '선진화 5대 핵심 전략'. 공동체 자유주의는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철학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이념을 뜻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성찰적 배려와 자율적 책임을 중시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보수의 새로운 정치철학으로서 그 위상을 갖는다.

박세일은 5대 반(反)선진화 사상을 지적한다. 수정주의(신좌파적) 역사관, 결과평등주의, 집단주의(전체주의), 반(反)법치주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그것이다. 이러한 반선진화 사상에 맞서 그가 제시한 선진화 5대 핵심 전략은 교육과 문화의 선진화(최고 핵심 전략), 시장 능력의 선진화(선진경제), 국가 능력의 선진화(선진정치와 행정), 시민사회의 선진화(선진시민사회), 국제관계의 선진화(선진외교안보)다. 선진화를 통해 박세일이 이룩하려는 나라는 '부민덕국(富民德國)의 선진일류국가'다. 부민덕국이란 부자 국민과 소프트파워 강국의 결합을 뜻한다.

박세일은 특히 통일 담론과 관련, '선진 통일 전략'에서 '선진화 통일론'을 제시했다. 요컨대 선진자유·자주공영·민주평화를 대원칙으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통일 외교를 강조한다. 한마디로 박세일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종합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전략을 선보였다.

위공 박세일은 생전에 경세(經世)와 안민(安民)의 대강(大綱)을 정리한 '지도자의 길: 안민학(安民學) 서문'에서, 특히 "치열한 준비도 고민도 없이 지도자가 되려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죄악"임을 강조했다. 경세와 안민을 위한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적어도 네가지 능력과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것.

첫째, 애민(愛民)과 수기(修己)이다. 국민과 나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수양에 투철해야 한다. 국가 경영은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자기 수양을 위해서는 사욕(私慾)과 소아심(小我心)을 줄이고 공심(公心)과 천하심(天下心)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대사에 임해야 한다.

둘째, 비전과 방략(方略)이다. 지도자는 공동체가 나아갈 역사적 방향과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 그리고 해결 방식에 대하여 확고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은 어떠한 시대이며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야 국가 비전과 주요 국정과제를 수립할 수 있다.

셋째, 구현(求賢)과 선청(善聽)이다. 인재를 널리 구하고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민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드는 태도가 바로 선청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말을 많이 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넷째,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이다. 역사의식을 갖고 다음 시대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 그리고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국민들과 역사에 남겨주고 물러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도자에 걸맞은 인품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대의명분과 시대정신을 따라 공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하게 국사(國事)를 지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세계질서의 변화와 국내환경의 변화를 조율하면서 자기를 낮추고 국민을 섬기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심과 시대정신에 투철한 정치지도자를 국민들은 갈구한다. 최소한 염치를 알고, 통합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70 평생 많은 걸 보고 겪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외교 국방 안보는 물론, 정치 사법 경제 사회 등 대내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어려움에 처한 대한민국호(號)의 앞날이 걱정되는 것은 비단(非但)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욱 위공 박세일 선생의 원대한 꿈과 비전이 절절하게 다가오고 그의 분신인 한선재단에 거는 기대 또한 각별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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