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3 09:58:44
하지만 막대한 초과이익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5월 “AI·반도체 호황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질 경우 그 일부를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돌려주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직후부터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 재원으로 삼고 지급 상한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올해 초 임직원들에게 2025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기본급의 2964%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정하고 연봉의 50%로 묶인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라”며 사측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지난 5월 삼성전자 노사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고, 영업이익의 10.5%를 재원으로 삼아 상한 없이 지급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오늘 이익 나누다 내일 성장 놓쳐”
30·40세대 전문가들이 주축인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팀 ‘The 새로운 생각’과 주간조선, 자유기업원,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이와 관련 지난 7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도체·AI ‘어닝 서프라이즈’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호황의 합리적 배분과 재투자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성과급을 둘러싼 논쟁을 회사법과 노동법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최 교수는 주주를 회사가 각종 비용과 채무를 지급한 뒤 남은 몫을 갖는 ‘잔여청구권자’로 규정했다. 회사가 이익을 내면 그 과실을 얻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투자금을 잃는 리스크를 함께 갖기 때문이다.
반면 근로자는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고,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손실을 직접 부담하지는 않는다. 최 교수는 “근로자가 영업이익이 늘었을 때 그 과실을 함께 가져가려면 손실이 발생했을 때의 위험을 어떻게 나눌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며 “영업이익 전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지 극단적인 사고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성과급의 규모와 지급 방식을 주주가 직접 정하는 방식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는 기본적으로 이사회의 경영 판단 사항이다. 근로자의 근로 의욕을 높이면서도 회사의 미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성과급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단기 현금 지급보다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 장기 보상을 활용하고, 영업이익에 성과급을 기계적으로 연동하기보다 경제적부가가치(EVA)와 지급 상한 등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을 제언했다. 최 교수는 “반도체는 오늘 돈을 벌었더라도 내일 투자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없어진다”며 “현재의 이익은 계속 기업으로 남기 위해 지금도 투자에 투입돼야 하는 재원”이라고 주장했다.
김민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의 반도체 호황이 과거의 지속적인 설비·기술 투자가 쌓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생산시설 유치에 나서고, 중국·일본도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우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반도체는 계속 투자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는 산업”이라며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투자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800조원이 투입될 예정인 광주 반도체 팹과 관련해서 김 교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투자와 더불어 전력·용수·인력·공급망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기업의 이익 일부를 기금화해 관련 인프라에 재투자하고, 이를 통해 산업 경쟁력과 국민 이익이 함께 커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핵심 인프라를 국가 차원의 패키지로 지원하고,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 갈등까지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재와 비메모리에 투자해야”
조원갑 한국팹리스산업협회 본부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착시’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35%에 불과하고 나머지 65% 안팎을 차지하는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미국 기업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현재의 초과이익은 우리가 준비를 잘해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능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비메모리에서는 미국 팹리스 기업을 뒷받침하는 고급 생산기지에 머물러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를 단순히 배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취약한 팹리스 생태계와 설계 전문인력, 설계자산(IP), 시제품 생산 인프라를 강화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를 공동주최한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초선, 경기 포천·가평)은 “반도체·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설비나 기술뿐 아니라 이를 운용하고 발전시킬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파운드리·후공정 등을 아우르는 복합 생태계인 만큼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기업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 가능한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청년들이 기술을 습득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이른바 ‘네버 스킬링’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 속한 김용태 의원은 대학 교육, 기업 인턴십, 취업준비생 대상 실전교육으로 이어지는 3단계 인재 양성 체계를 제안했다. 대학 내 반도체·AI 정원 및 계약학과 확대와 기업 참여형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채용 연계형 인턴십과 삼성청년SW·AI아카데미(SSAFY)식 실전교육을 반도체 설계·공정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AI·반도체 기업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인재 양성에 재투자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합리적인 방향”이라며 “정부도 민간 주도의 교육 프로그램에 세제·재정 혜택을 제공하고 신입 채용을 유도할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