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3 09:26:12
지난 6월 1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만난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최근 삼성전자 노동조합 사태를 보고 이같이 단언했다. 성과급 문제로 총파업을 예고했던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지난 5월 20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로 극적으로 파업을 철회했지만, 한국 노사관계의 방향에도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성과급 갈등은 노사 갈등인 동시에 구성원 내부의 공정성 갈등이 된다”며 “노조의 실리적 요구 자체를 비판할 순 없지만, 앞으로 노조의 성숙도는 ‘얼마나 많이 얻어내는가’보다 ‘어떤 책임 있는 방식으로 나누는가’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업은 막았지만… 이제 시작?
수십 년간 대한민국 노사관계를 최일선에서 지켜봤던 그에게도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성과급 갈등’은 전대미문의 사태다. 김 교수는 행정고시(36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직한 뒤 서울지방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통령 소속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을 역임하며 노사정 관계는 물론 사회적 대화를 사실상 총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올해 하반기 노사 교섭의 최대 화두는 단연 ‘성과급’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특별경영성과급’ 제도가 신설된 삼성전자 노사의 잠정 합의안에 대해서는 “파업을 막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문제의 종결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성과급 산정 기준의 공개 범위, 사업부별 차이 반영 방식, 영업이익과 개인·조직 기여도의 연계 기준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앞으로 AI 전환으로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그 성과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성과급 논의는 미래 노동시장의 갈등 구조를 보여주는 예고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과급은 조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추가 보상 체계다. 다만 성과급 문제가 곧바로 정당한 쟁의 사유가 되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 교수는 “성과급의 성격과 운영 방식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지급 기준이 사전에 정해져 있거나 관행적으로 반복 지급돼 왔고, 근로 제공의 대가로 인식돼 온 성과급이라면 교섭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점을 고려했을 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노사 관계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 체계를 설계했을 당시에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이 떠오르기 전이었다”며 “이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합의한 것으로,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말하는 ‘무지의 장막’에 가까운 객관적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시 삼성전자를 추월하겠다는 노사의 공동 목표가 있었고, 그런 점에서 성과급 제도가 긍정적으로 작동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초과이윤 분배론’도 제기된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6월 5일 공개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한 초과이익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초과 이윤은 상대적 개념”이라며 “이해관계 당사자인 기업이 판단하는 문제인데, 제3자가 ‘초과이윤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에 덧붙여 “영업이익이 초과이윤인지는 별도의 논쟁이 필요하다”며 “영업이익 역시 주주, 경영진, 노동자 등 어느 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성과급 갈등은 이른바 ‘한국적 갈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성과급을 현금으로 주는 나라가 거의 없다”며 “과거에 기본급을 줄이고 성과급과 상여금을 인센티브 개념으로 줬던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김 교수는 노조의 성격이 변화한 점도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았다.
“원래 노조의 개념은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에서 출발했어요. 당대의 핵심은 ‘연대의식’인데, 오늘날 노조는 개인 노조의 이익을 취득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별로 없죠. 요즘 말하는 ‘귀족 노조’라는 표현도 일종의 프레임이지만, 지금 청년들이 대기업이 아닌 외부 노동시장에 포진해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조직률이 높은 대기업 노조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사회적 반발 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죠.”
“성과급 갈등, 청년고용에 그림자”
그의 말처럼 성과급 갈등은 삼성전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국민 메신저’ 회사인 카카오 노조는 지난 6월 10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내건 핵심 요구도 영업이익의 13~14% 수준인 1인당 약 1000만원의 성과급이었다. 김 교수는 이를 ‘모호한 노동쟁의 범위’ 때문이라고 봤다.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2·3조)’은 2조에서 노동쟁의 대상을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전통적인 근로조건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넓혔다. 여기에 3조에서 노동조합의 손해배상 부담이 조정되면서 노조의 쟁의행위 비용도 재평가됐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성과급이 노동쟁의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면 어떤 노조든 투쟁에 나서기 마련”이라며 “흐릿한 법 조항은 사실상 ‘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개정 노조법 이후 성과급을 비롯해 AI 도입, 자동화, 구조조정, 외주화 같은 경영상 결정들이 근로조건과 연결돼 교섭, 쟁의 의제로 올라올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 판단과 보상 교섭이 과도하게 충돌하면서 상시 분쟁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가령 AI 자동화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가 단체협약을 마쳤더라도, 해당 사안이 다시 교섭이나 쟁의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며 “정부가 노동쟁의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급 갈등이 청년 고용에도 연쇄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김 교수는 “성과급으로 가져가는 몫이 커질수록 기업의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협력업체에 대한 투자도 결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투자와 연결되는데, 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장비를 덜 쓴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장비 투자가 줄어들면 결국 채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각 회사 노조들이 성과급 외에 요구하는 ‘정년 연장’ 역시 청년 취업난을 일으킬 요소로 부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청년을 고용하는 대신 ‘재고용’을 고려하고 있어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심해지고 있는데, 원청이 높은 임금을 받는 데다가 성과급까지 준다? 누가 하청을 가고 싶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