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가까스로 파업 위기를 넘겼지만 이번 갈등은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달라진 노사 관계의 불확실성을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을 재원으로 한 성과급 제도화를 파업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과급 요구가 어디까지 정당한 쟁의 대상이 되는지 명확하지 않은 개정 노조법의 회색지대가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임금협상의 부수적 쟁점으로 여겨졌던 성과급이 앞으로는 대기업 노조의 핵심 요구이자 파업 카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산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개정 노조법이 성과급을 둘러싼 쟁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기본급이나 수당 인상은 전통적인 단체교섭 대상이다. 개인이나 부서의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 역시 임금협상 과정에서 다뤄질 수 있다. 하지만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떼어 성과급 재원으로 삼자는 요구는 성격이 다르다. 영업이익은 직원 보상뿐 아니라 연구개발(R&D), 설비 투자, 주주 환원, 미래 사업 준비 등에 쓰이는 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이 같은 요구가 어디까지 파업 명분이 될 수 있는지 경계가 더 흐려졌다는 점이다. 개정 노조법은 노동쟁의의 범위를 이전보다 넓혔다. 과거에는 주로 앞으로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정하는 문제가 파업 대상이었다면 개정 이후에는 이미 정해진 권리나 계약을 지키라는 요구도 일정 부분 쟁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됐다. 성과급 요구는 이 지점에서 논란을 낳는다. “앞으로 성과가 좋으면 성과급을 더 달라”는 요구는 일반적인 임금협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이미 벌어들인 영업이익 중 일정 비율은 직원에게 나눠야 한다”는 요구가 되면 단순 임금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 배분 방식에 개입하는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삼성전자 사례에서도 이 논란은 명확히 정리되지 못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을 재원으로 삼아 직원 1인당 최대 6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성과급 제도화 요구를 임금·수당 개선 요구와 함께 제시했다. 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노조는 파업에 나설 수 있는 절차적 요건을 갖췄지만 이 과정에서 성과급 제도화 요구 자체가 정당한 파업 대상인지까지 분명하게 판단됐는지는 논란이다. 노동위가 개별 요구 하나하나의 적법성을 따지기보다 노사 간 합의가 더 이상 어려운 상황인지를 중심으로 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된 점도 노조의 쟁의 시도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정 노조법으로 불법 파업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손해배상 부담이 과거보다 줄어들 경우 노조가 파업 손실에 대한 부담을 덜 느끼고 쟁의권 확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과급 요구가 임금협상을 넘어 파업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 임금·노무 제도의 기준처럼 여겨져 왔다. 성과급 제도화를 둘러싼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요구를 파업 의제로 내세운 만큼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비슷한 요구를 더 강하게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주요 대기업 노조 사이에서는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삼으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LG유플러스 노조는 영업이익의 30%,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20%, 카카오 노조는 13~15%를 성과급으로 배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기업별 부담은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를 수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논의된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별도 재원으로 만들어 다시 배분하는 새로운 성과공유 방식에 가까웠다”며 “적자 사업부 몫까지 회사가 별도 재원으로 보완하는 구조라면 시장에서는 결국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에 추가 부담까지 얹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단기적으로는 노사 갈등을 봉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의 투자와 재무구조까지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이 기준처럼 굳어지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주력 산업 전반의 인건비 체계와 투자심리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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