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8 13:20:19
30·40세대 전문가들이 주축인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팀 ‘The 새로운 생각’, 주간조선, 자유기업원은 지난 5월 11일 서울 중구 한반도선진화재단 회의실에서 ‘행정통합, 왜 필요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바람직한 행정통합의 방향을 논의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행정통합 논의의 핵심은 행정체계를 어떻게 재설계하고 중앙정부로부터 어떤 권한을 이양받을 것인가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번갯불에 콩 굽듯 통합 진행”
제1발제를 맡은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전남·광주 통합 추진 과정을 두고 “졸속 통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청주·청원 통합이나 창원·마산·진해 통합 당시에는 충분한 연구와 공론화 과정이 있었지만, 이번 논의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생략된 채 추진되고 있다”며 “중앙정부 필요에 따라 밀어붙여지는 구조인 셈”이라고 말했다.
고 실장은 통합 논의에 앞서 중앙·지방정부 관계 양상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특별시가 출범한다고 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성이 높아지거나 자율성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가 올해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학위 청구논문에서 제시한 ‘중앙·지방정부 간 협력성, 수직성, 자율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앙·지방 간 수직성 점수는 노무현 정부 3.64점, 이명박 정부 3.64점, 박근혜 정부 3.55점, 문재인 정부 3.61점, 윤석열 정부 3.67점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고 실장은 이를 두고 “정권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중앙·지방정부 간 수직적 관계는 지난 15년간 정체되거나 유지돼 왔다”고 분석했다.
이에 고 실장은 중앙정부 관료들의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이 실질적 권한 이양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남·광주 통합특별시가 중앙 주도가 아닌 지역 주도의 경제전략과 재정분권 중심으로 설계된다면, 중앙의 지원과 지방의 자율성이 결합된 새로운 광역자치 모델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행정통합보다 경제통합이 우선”이라며 “전남·광주의 산업 기반을 연계해 남부권 핵심 경제권을 구축하고, 지방소비세·지방소득세 비중 확대 등을 통한 재정분권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지방정부를 ‘약자’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곽노성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객원교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중앙부처 공무원을 상대할 때는 을의 위치에 놓이지만, 국회나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지방정부가 잘못된 정책으로 재정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며 “지자체가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돈으로 좋은 결과를 냈을 때 인정받고 실패했을 때는 책임을 지는 구조가 정리돼야 성과지향적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남·광주 통합 이후의 숙제
다음 발제자로 나선 성시경 한국행정학회 회장은 지방행정통합의 의의와 방향을 분석하기에 앞서 지역 불균형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성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 행정구역 간 인구 편차는 136 대 1”이라며 “2025년 기준 경기도 수원시의 인구가 100만명을 웃도는 반면 경북 울릉군은 8600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주민 대표성 확보는 물론, 민주적 책임성과 공공서비스의 효율적 전달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역 불균형은 2024년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인구 및 지역내총생산(GRDP) 비교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성 회장은 경기(약 550조원), 서울(약 490조원)에 비해 다른 지역은 GRDP가 200조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수록 이러한 격차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막대한 부가가치가 수도권 반도체 산업에 집중되면서 사실상 서울·경기 중심의 국가 운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성 회장은 “지금은 광역 단위 재편이 중요한 시기인데, 생활권과 경제권이 기존 행정구역과 괴리돼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천안·아산이 행정구역상 충남에 속해 있지만, 실제 주민 생활권은 경기 남부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어 “전남·광주도 인근 지역으로 1시간 내 이동 가능한 생활권에 놓여 있다”며 “공기업이나 각종 사업 단위도 기존 17개 광역권 체계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어 행정구역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성 회장은 오는 7월 출범할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와 관련해서는 “특별법 조문이 400개가 넘는다”며 “제주특별자치도법 특례에 여러 조항을 계속 덧붙이다 보니 법안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해졌다”고 우려했다. 이어 “법은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할지는 의문”이라며 “중앙정부가 결국 핵심 권한 이양을 하지 않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행정조직 통합의 부작용 문제도 주요 과제로 꼽혔다. 성 회장은 “예컨대 전남과 광주는 교육공무원 규모 차이가 상당하다”며 “근무지 여건도 달라 통합 이후 인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와 전남을 합하면 지방 공기업이 40~50개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기능이 중복되는 기관 15~20개가량을 통폐합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범위 역시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성 회장은 “각 부처가 보유한 권한을 특별시장에게 이양하겠다는 방향은 제시됐지만, 재정 인센티브와 예산 배분, 특별시장의 주된 근무지 등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 이후 정치권 역시 각 지역 연고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며 “지역 간 불균형이 구조화되지 않도록 정치인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은 “행정통합 과정에서는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만큼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도 중요하다”며 “정치적 기득권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실질적 통합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균형발전’이라는 표현에 머물기보다는 지방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발전 균형’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