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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직률 13% 노조, 전체 근로자 대표해야 상생 길 열린다
 
2026-04-29 14:18:53

◆ 김덕호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노사관계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원청의 사용자성 확대에 따라 교섭 주체와 범위가 넓어지면서 현장의 혼란도 커지는 모습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라는 과제와 갈등 관리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동절을 앞두고 김덕호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과 서울지방노동위원장을 지낸 그는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하며 수많은 노사 갈등을 중재해왔다. 현재 성균관대 산학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낮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과대 대표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아울러 AI 대전환 속에서 노조의 역할 재정립과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섭 주체 명확해야 갈등과 혼란 줄어

 

Q. 노란봉투법 이후 현장의 변화는


A. 시행 초기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교섭 질서의 불확실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 늘고 교섭단위 분리와 의제 세분화가 겹치면서 현장에서는 교섭 과부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청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사실상 우회하면서 교섭 안정성도 약화됐다. 교섭 주체와 범위가 불명확해지며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는 제도 설계의 공백에서 비롯된 문제다. 제도의 방향은 이해되지만, 성과는 결국 설계에 달려 있다.”

 

Q.기업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A. 한 달 만에 372개 원청을 상대로 1011개 하청 노조, 14만 6000명이 교섭을 요구했다. 지난 20일 물류 현장에서 발생한 화물연대 조합원의 안타까운 사고는 그 긴장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충분한 설계 없이 제도가 작동하면 갈등은 더욱 격화될 수 있다. 원청이 다수 노조와 동시에 협상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경영 판단과 투자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교섭 확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교섭 범위와 책임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Q. ‘노사 관계 격변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데

 

A. 상생의 진통인지, 경쟁력 훼손의 신호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핵심은 방향보다 책임과 교섭 범위의 경계가 얼마나 명확한가에 있다. ·하청 격차 해소는 필요하지만, 책임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교섭 요구가 급증하면 기업은 상시 교섭과 분쟁에 노출되고 경영 판단과 투자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특히 교섭단위 분리와 의제 세분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사업장 내 다층적 교섭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생산성과 협상 효율성을 동시에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결국 노란봉투법의 성패는 교섭질서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조합, 전체 노동자 이해 대표해야

 

Q. 정부 정책이 노동계에 치우치면서 노동공화국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데


A. 그 표현은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다만 최근 정책이 노동권 강화에 무게를 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노동권의 강화 자체가 아니라 대표성의 왜곡이다. 노조 조직률은 13%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책과 교섭은 조직된 일부의 이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대표성 과대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대립적 틀을 유지하면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결국 균형의 핵심은 노동권의 크기가 아니라 대표성의 범위다. 노동권은 강화하되 그 효과가 노동시장 전체로 확장되도록 해야 하며, 해법은 대립이 아니라 분절된 노동시장을 연결하는 데 있다.”

 

Q. 노조 활동이 권익 신장을 넘어 정치화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A. 노동조합의 정치화 우려는 일정 부분 현실에 기반한다. 민주노총의 투쟁 방식과 한국노총의 정당 정책 연대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제도권에 반영하지만, 동시에 노조를 정치 행위자로 인식하게 한다. 다만 본질은 정치 참여가 아니라 대표성이다.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을 포괄하지 못하면 정치적 영향력은 오히려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노사 갈등 커질수록 기업은 AI·로봇 선택


Q. AI·로봇 확산이 노조를 바꿔놓지 않을까


A. “AI는 노조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대체가 아니라 노동이 가져가던 몫이 자본과 기술로 이동하는 보상구조의 변화다. 기술 도입을 저지하는 대응은 자동화를 더 앞당길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로봇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갈등이 커질수록 기업은 기술을 선택하게 된다. 해고가 어려운 구조에서 기업은 채용을 축소하고, 청년층은 첫 일자리와 경력 형성의 사다리를 잃고 있다. 조용하지만 잔인한 구조조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노동자 보호에만 머물면 신규 진입이 막히고 조합원 기반도 축소될 수 있다. 이제 노동조합은 저지가 아니라 전환의 주체로서 직무 이동, 재교육, 생산성 배분의 규칙을 설계하는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Q. 반도체 성과급 갈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A. 성과를 노동과 공유하자는 요구는 정당하다. 다만 범위와 방식이 문제다. 반도체 같은 전략 산업에서는 배분 갈등이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과도한 요구나 파업은 투자 여력을 약화하고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조직된 노동의 요구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좌우하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도 우려된다. 그 부담은 하청 단가 압박과 투자·고용 축소로 전가돼 이중구조를 심화시킨다. 지금은 분배와 투자가 충돌하는 시기다. 반도체 경쟁은 이미 국가 간 자금과 기술이 맞붙는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 1970~80년대 미국이 반도체 제조 주도권을 동아시아로 넘겨주게 된 계기도 경직된 노사관계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며, 단기 이익이 장기 경쟁력을 훼손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격차 고착화하는 이동의 폐쇄성 해소해야


Q.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데

 

A. 대기업 노조의 교섭력이 커질수록 임금과 복지는 개선되겠지만 노동시장 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조직률 13% 수준의 노조가 대기업·공공부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시장이 내부와 외부로 분리된 구조다. 내부 노동시장은 보호와 안정이 축적되는 반면, 외부 노동시장은 불안정이 상시화되어 있다. 이 두 시장 사이의 높은 장벽으로 인해 이동도 제한되어 있다. 결국 격차의 본질은 소득보다도 이동의 폐쇄성에 있다. 이 구조에서는 상층의 개선이 하층으로 확산되지 않고 비용만 외부로 전가된다. ‘정의로운 배분은 더 나누는 문제가 아니라, 분절된 노동시장을 연결하는 데 있다. 노동조합이 87%의 미조직 노동을 포괄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Q. 중앙노동위원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는 지적은


A. 이런 평가가 나온다면 핵심은 편향 여부보다 판정 기준의 예측 가능성과 절차에 대한 신뢰 문제다. 유사한 사건인데 결과가 달라지거나 판단 근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어느 한쪽은 편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용자성, 교섭단위, 교섭 범위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이런 불신이 더 커진다. 위원 구성 방식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지만, 결국 판단 기준의 체계화와 절차의 투명성, 그리고 판단 이유의 충분한 설명이 공정성의 핵심이다.”

 

해고가 죽음되지 않게 유연안정성 필요

 

Q.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 친화 기조 속에 정책 편향 우려를 어떻게 봐야 하나


A. 노동 친화적 기조 자체는 의미가 있다. 다만 쟁점은 친화 여부가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느냐에 있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유연안정성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국에서 해고는 단순한 계약의 종료가 아니라 삶의 단절이다. 내부 노동시장이라는 성벽 안에서 한 번 밖으로 밀려나면 재진입이 어렵다. 유연성은 노동시장 외부에, 안정성은 내부에 있는 게 문제다. 이러니 유연안정성을 높이자는 정책은 의도와 달리 이동을 막는 역설이 발생한다. 정책은 해고가 죽음이 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핵심은 성벽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직무 전환과 재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직무에 맞지 않거나 성과가 부족한 경우 합리적인 이동이 가능토록 할 때 편향 논란도 넘어설 수 있다. 노동자는 기업의 울타리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기반으로 시장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Q. 극한 대립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A. 사회적 대타협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씩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노동계는 투쟁 중심의 관성과 일부의 이해관계에 머무는 한계를, 경영계는 원·하청 구조에서 비용과 위험을 외부로 전가해 온 관행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부는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드는 설계자가 돼야 한다. 기준이 불명확하면 갈등은 거리로 나가고, 기준이 명확하면 협상은 제도 안으로 들어온다. 결국 사회적 대타협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 설계의 결과이며, 무엇을 더 얻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선택할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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