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8 08:57:32
이날 ‘나는 솔로 시대, 연애의 붕괴: 남성과 여성의 상호인식 트렌드’라는 주제로 발표한 노정태 작가는 연애와 결혼의 붕괴를 단순히 ‘특정 집단의 기피’나 ‘개인의 이기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 작가는 자신이 번역한 ‘모던 로맨스’를 인용해 현대의 연애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 데이팅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지리적 근접성과 공동체 내의 만남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정보와 수단, 선택지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연애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른바 ‘선택의 역설’이다.
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타인의 ‘과장된 일상’을 계속해서 접하다 보면, 연애에 대한 기대치가 비현실적으로 상승하고 현실적 기준을 세우기 어려워져 상대를 고르기 어렵게 된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심리적 부담이 커지면서 ‘나는 솔로’ ‘하트시그널’ 같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대리연애 경험을 제공하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노 작가는 “짝을 찾는 과정에는 언제나 개인적 욕구, 사회적 압력, 정보의 범위가 작용한다”며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여성의 기준이 과도하게 높아졌다’ ‘마음을 비우면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주장했다.
韓, 평균 결혼 비용 일본의 6배
18대 국회의원(비례)을 지낸 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전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은 ‘한국 고비용 결혼구조의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최근 급증하는 한·일 간 국제결혼을 분석하고 현실적 대안을 모색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은 전년 대비 40% 증가했는데, 이 같은 원인 중 하나에는 막대한 ‘결혼 비용’ 문제도 깔려 있다고 손 위원장은 분석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한국의 평균 결혼식 비용은 3억6173만원으로, 일본의 6배에 달한다. 손 위원장은 “우리나라 결혼 시장은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이라는 마케팅 전략 아래 정보 비대칭성이 심하고, 신혼집은 적어도 전세 이상 아파트를 마련하려 하면서 결혼 비용이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 위원장은 “일본은 결혼할 때 부모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남성에게 주거 부담 기대도 없다”며 “결혼 비용도 약 5000만원 정도로 남녀가 절반씩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또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집을 감가상각형 소모품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신혼부부들 역시 작은 임대주택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손 위원장은 “완성형 결혼에서 과정형 결혼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구조적 전환도 촉구했다. ‘도심형 임대주택 확대’와 ‘남녀 동거보호제 도입’, 민간 임대시장 규제 완화와 임대료 지원 등은 그가 이날 세미나에서 소개한 해결책들이다.
프랑스의 결혼 대안제도인 시민연대협약(PACS·팍스)도 대안모델 중 하나다. 팍스는 법적 인정을 받는 동거 관계로, 결혼에 준하는 각종 세제 혜택과 가족수당, 사회보장급여 같은 보조금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손숙미 위원장은 “프랑스 전체 출산의 63.9%가 비혼 출산”이라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부분 국가는 비혼 출산 비율이 40%가 넘지만, 한국은 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출산장려금 4조 썼지만 효과 미미
‘결혼, 출산, 육아, 과연 현금지원만이 해답인가?’라는 주제로 데이터를 활용한 해법을 제시한 김준형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추진된 현금성 지원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준형 교수는 “출산장려금 예산만 해도 4조원이 넘고, 많은 지자체가 결혼지원금과 주거비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효과가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통계적으로도 출산율을 1%포인트 높이기 위해선 GDP(국내총생산) 대비 0.46%인 현금성 지출을 3배는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 있는데, 그에 비해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학자금이나 출산 지원금은 체감효과가 크지 않고, 주소를 일시적으로 옮겨 수당을 받고 이사가는 유입 효과만 있는 것 같다”는 지자체 일선 공무원들을 인터뷰한 결과도 소개했다.
김 교수가 주목한 결혼의 가장 확실한 변수는 ‘정규직’ 여부다. 김 교수는 “여성이 정규직을 갖고 있으면 출산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고용이 안정돼 있고 ‘이대로 일하면 집을 살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어야 결혼이나 출산 의향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육아 비용을 줄여주는 육아인프라 구축이 현금지원보다 출산율에 더 큰 영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며 “공공 돌봄 서비스, 임신·출산 기반 시설, 유연근무제, 출산휴가 확대 등 정밀하게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윤진 건국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유재은 스페셜스페이스 대표와 김채수 국민의힘 중앙대학생위원장이 청년 세대 대표 토론자로 참여했다. 유재은 대표는 “청년들에게 결혼은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진로의 일부로서 완성된 커리어의 마지막 단계로 인식된다”며 “고비용 결혼식 문화, 경력단절 위험,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결혼은 ‘행복한 과정’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제도’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에서 논의되는 ‘동거보호제’에 대해서는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위장 동거, 복지 남용, 가족 개념의 혼란 같은 부작용 가능성도 크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김채수 국민의힘 중앙대학생위원장은 “실업급여 같은 단기 지원보다 근로연계형 현금 지원이 결혼을 결정하는 실질적 유인이 될 수 있다”며 “중소기업 청년에게 소득 인센티브를 주거나, 근로장려금을 확대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공동 주최한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초선, 경기 포천·가평)은 “출산 이전 단계인 연애의 실종, 고비용 결혼 등에서 이미 사회 기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며 “연애와 결혼이 가능해지는 구조부터 실증적으로 다시 진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재선, 부산 사하구갑)도 “청년세대의 연애·결혼·출산 문제는 심화되는 수도권 일극화와 비수도권 쇠락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영역”이라며 “청년세대의 현실적인 고민을 사적 공간으로만 남겨둘 게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로 여겨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