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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닫힌 보수·닫힌 진보가 대한민국 미래 닫는다
 
2024-02-13 10:20:10
정치는 우리 인간의 삶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동체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대립적 성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떤 현상과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이러한 충돌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이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어느 사회이든 어떤 현상과 사건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 영역에서 그 생각과 의견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근대사회에서 그 대립과 투쟁은 보수 대 진보 또는 좌파 대 우파의 이분법으로 정형화돼 왔다.

일반적으로 보수 또는 우파는 안정·시장·성장·공동체를 중시한다. 반면 진보 또는 좌파는 변화·국가·분배·개인을 중시한다. 두 이념은 안정 대 변화, 시장 대 국가, 성장 대 분배, 공동체 대 개인으로 맞서고 있다. 더하여, 대체로 서유럽에서는 좌파 대 우파의 어법, 미국에서는 보수 대 진보(리버럴)의 어법이 선호돼 왔다. 우리 사회에서는 두 이분법이 두루 쓰여왔다.

여기서 살펴보려는 것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에 대한 고찰이다. 두 이념의 차이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이러한 이분법이 얼마나 유효한 것인지, 21세기 현재에 이념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는지 탐구해 보려고 한다. 유용한 두 고전적 텍스트는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의 ‘좌파와 우파(Left and Right)’와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다.

‘좌파와 우파’의 주요 내용

보비오는 이탈리아 정치학자이자 정치가다. 1909년 토리노에서 태어나 2004년 세상을 떠났다. 토리노대 교수와 종신 상원의원을 지냈다.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와 함께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사상가로 평가돼 왔다.

보비오가 1994년 내놓은 저작이 ‘좌파와 우파’다. 1995년 후기 ‘비판에 답함’을 더한 개정판을 출간했고, 1996년 영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부제는 ‘정치적 구별의 의미’다. 한국어 번역본은 1998년에 나왔다. 당시 제3의 길 담론이 유행을 이룬 터라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좌파냐 우파냐’의 제목으로 출간됐다.

‘좌파와 우파’는 짧은 저작이다. 우리말 번역판은 190쪽 정도에 그치고 있다.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 분량이 짧다고 그 무게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보비오는 간결한 언어로 좌파와 우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선명히 펼쳐 보인다.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기원을 둔다. 근대 정치는 기본적으로 이 좌파와 우파 사이의 대결로 특징지어진다. 다시 말해 좌파와 우파는 서구 근대 및 현대의 정치 세력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이 좌파와 우파의 구분에서 유력한 기준으로 제시돼 온 것은 자유와 평등이다. 우파가 자유를, 좌파는 평등을 중시한다는 논리다.

보비오는 이의를 제기한다.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은 사회적 평등에 대한 태도라는 것이다. 좌파가 더 많은 평등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우파는 사회가 불가피하게 계층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들이다. 크게 보아 좌파는 평등을 지향하는 반면 우파는 불평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보비오의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는 역사적으로 우파가 기회의 평등을 중시한 반면 좌파가 결과의 평등까지 강조한 것과 맞닿아 있다.

둘째, ‘좌파와 우파’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주장은 자유에 대한 해석이다. 보비오는 자유에 대한 태도에 따라 온건파와 극단파를 구분한다. 온건파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반면, 극단파는 권위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평등과 불평등, 자유주의와 권위주의를 두 축으로 보비오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네 범주로 나눈다. 평등주의적인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극좌파’, 평등주의적인 동시에 자유주의적인 ‘중도좌파’, 불평등주의적인 동시에 자유주의적인 ‘중도우파’, 불평등주의적인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극우파’가 그것들이다. 현실 정치에서 이러한 스펙트럼은 ‘공산주의’ ‘민주사회주의’ ‘보수주의’ ‘파시즘’으로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좌파와 우파’에서 주목할 세 번째 주장은 ‘평등주의’와 ‘평균주의’의 구분이다. 보비오는 좌파가 평등주의적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이 똑같아야 하는 평균주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평균주의는 모든 이들이 모든 것에서 평등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이념인 반면, 평등주의는 불평등한 이들을 더욱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비오의 견해는 좌파를 평균주의로 비판하려는 것에 대한 반(反)비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널리 알려졌듯, 그리고 이 책에서 고백하듯, 보비오는 진보주의자답게 좌파를 지지한다. 따라서 이 저작이 가치중립을 유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더하여 평등 대 불평등,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이분법이 명쾌하지만 그 경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보비오는 제공하지 않는다. 좌파와 우파를 평등 대 불평등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현실을 과잉 단순화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좌파와 우파’는 자유 대 평등을 우파 대 좌파의 고유한 속성으로 보는 기성의 논리를 비판하는 데 기여했다. 자유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이고, 사회적 평등에 대한 태도가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일차적 기준이라는 보비오의 논리는 21세기 현재에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든스는 전후 영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다. 193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런던정치경제대(LSE) 학장을 지냈다. 우리 시대에 미친 그의 영향은 프랑스의 미셸 푸코와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에 필적할 만하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의 주요 내용

사회학자로서 기든스의 대표적 업적은 서구 모더니티에 대한 탐구다. 그에 따르면, 전후에 열린 ‘후기 모더니티’는 신뢰와 위험, 기회와 위협이 공존하는 ‘인위적 불확실성’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인위적 불확실성이란 인간이 사회적 삶과 자연의 조건에 지속적으로 개입한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위험을 지칭한다. 경제적 양극화, 환경의 위험, 민주적 권리의 붕괴, 대규모 전쟁의 위협이 그 새로운 위험들이다. 이 위험들을 구식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기든스가 1994년 내놓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의 문제의식이다.

구식 처방으로 기든스가 주목한 패러다임은 보수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다. 이 노선들에 대해 기든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보수주의는 과거의 전통을 전통적 방식으로 보존하려 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적 위험을 내포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 및 개인주의의 원리를 옹호하는 동시에 종교·성·가족 영역에서 전통을 보존하려 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혼합물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사회적 성찰성이 높은 고도로 복합적인 체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가 겨냥한 것은 이러한 구식 처방을 넘어선 새로운 처방이다. 이 새로운 처방으로 기든스는 다음과 같은 목록을 내놓는다. 손상된 연대의 회복, 공식적·비공식적 영역에서 펼쳐지는 삶의 정치 확산, 발생적 정치에 대한 고려, 대화 민주주의, 적극적 복지의 시각에서 본 복지국가 모델의 재고, 폭력의 부정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기든스가 새롭게 도입하는 개념이다. 먼저 ‘삶의 정치’란 자아의 성찰성을 기반으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슈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정치를 지칭한다. 낙태 문제에서 핵전쟁 위험까지 후기 모더니티 생활세계의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사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규범적 기초를 세우려는 것이 생활정치의 목표다.

한편 ‘적극적 복지’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적인 복지정책을 혁신하려는 프로그램이다. 그 핵심 아이디어는 현금 급여와 서비스 제공에서 일자리 창출로 복지의 핵심 영역을 이동시키고, 이를 위해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직업훈련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적극적 복지는 완전 고용이라는 케인스주의의 이상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한 정책이다.

기든스가 강조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그건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이 더 는 유효하지 않고, 따라서 기성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의 후속 저작으로 1998년 출간한 ‘제3의 길(The Third Way)’에서 기든스는 전통적인 ‘제1의 길’과 ‘제2의 길’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내놓았다. 제1의 길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르는 전통적 복지국가를 목표로 한 사회민주주의 기획이라면, 제2의 길은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신자유주의 기획이다.

제3의 길은 제1의 길에 대해서는 시장의 효율성을, 제2의 길에 대해서는 사회적 평등을 부각하는 일종의 종합을 모색한다. 구체적으로 급진적 중도, 새로운 민주국가, 활발한 시민사회, 민주적 가족, 신혼합경제, 통합으로서의 평등, 적극적 복지, 사회 투자 국가, 세계주의적 민족, 세계적 민주주의가 그 목록을 이룬다.

이러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제3의 길’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진행됐다. 대표적 비판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좌파와 우파의 ‘사이에서(between)’ 진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적당히 섞어놓은 절충적 대안이라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든스의 논리는 현실 정치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에 의해 수용됐고, 신보수로부터 권력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의 부제인 ‘급진정치의 미래’와 ‘제3의 길’의 부제인 ‘사회민주주의의 갱신’은 현실 정치 차원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수의 혁신과 굴절                                                                          

오늘날 통상적으로 언급하는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는 서구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경제적 산업혁명, 정치적 시민혁명, 문화적 민족주의가 열어놓은 모더니티의 세계 속에서 대립적 이념 구도가 형성돼 왔다. 보수와 진보의 역사적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서구사회에서 보수의 고전적 기초를 세운 이는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영국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다. 버크는 인간의 합리성에 한계가 있고, 사회가 이성보다 도덕과 관습으로 재생산되며, 문명의 진보가 안정의 기반 위 점진적 개혁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전통주의·질서주의·점진주의를 앞세워 계몽주의의 진보에 맞서는 이념적 대항 거점을 선사했다.

서구 보수가 두 차례 혁신을 모색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첫 번째 혁신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경제이론으로 무장한 1980년대 초반 ‘신보수’였다. 감세, 민영화, 규제 완화 등을 내건 신자유주의와 가족 및 국가의 가치를 중시한 공동체주의는 신보수주의의 양 날개였다.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는 그 성공 사례였다.

두 번째 혁신은 앞서 지적한 좌파의 ‘제3의 길’을 벤치마킹한 2000년대 초반 ‘우파적 제3의 길’이었다. 좌파적 제3의 길이란 신보수로부터 권력을 탈환한 영국 블레어 정부와 독일 슈뢰더 정부의 신사회민주주의를 지칭했다. 우파적 제3의 길은 실용과 통합을 내세워 신자유주의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정치적 기획이었다. 영국 캐머런 정부는 ‘따듯한 자본주의’, 독일 메르켈 정부는 ‘탈이념적 정치연합’을 추구해 보수의 21세기적 지평을 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구 보수는 미국 공화당에서 독일 기민당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독일 기민당이 시장·통합·품격을 중시하는 전통적 보수 노선을 걸어왔다면,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주의’라는 보수적 포퓰리즘 노선으로 전환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기성 정치인들을 기득권자로 공격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적대시하며 리버럴한 개인보다 ‘위대한 미국’이라는 국가주의를 앞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주의가 올해 미국 대선에서 한 번 더 승리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진보의 기획과 분화

한편, 진보란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모색하려는 사상적·정치적 기획을 통칭한다. 서구 사회에서 진보는 근대 초기의 계몽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기원을 둔다.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역사를 진보시킬 수 있다고 설파했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변혁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 근대의 진보는 변화·진화·발전과 동의어였다.

서구 현대의 진보에는 두 차례의 결정적 모멘트가 존재했다. 첫 번째 모멘트는 혁명과 개혁 노선의 분화였다. 20세기 전반에 그것은 ‘자본주의 밖의 혁명(국가사회주의)’과 ‘자본주의 안의 개혁(사회민주주의)’으로 구체화됐다. 국가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론을 거점으로 삼았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스웨덴 사민당은 개혁 노선의 대표 주자로 평가돼 왔다.

두 번째 모멘트는 앞서 지적한 ‘제3의 길’이었다. 제3의 길은 구(舊)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넘어서려는 중도진보 기획이었다. 시장의 활력을 북돋는 신혼합경제의 도입과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는 적극적 복지로의 전환이 중핵을 이뤘다. 영국 블레어 정부, 독일 슈뢰더 정부, 프랑스 조스팽 정부, 나아가 미국 클린턴 정부까지 제3의 길 안에는 여러 작은 길이 놓여 있었다.

21세기의 서구 진보는 서유럽의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미국의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민주주의 신사회운동을 포함해 스펙트럼이 넓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관찰된다. 첫째, 세계화와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이 전통적 제조업을 쇠퇴시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불만이 높아졌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 일부는 진보 세력과의 동맹에서 이탈해 포퓰리즘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둘째,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커져왔다. 기후위기 대처와 성평등 구현은 불평등 해소와 함께 21세기 진보의 3대 의제를 이루고 있다.

서구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 변화를 지켜보면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차이는 21세기에도 존재한다. 보비오가 강조했듯 보수와 진보, 다시 말해 우파와 좌파는 사회적 불평등 해결에서 여전히 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오늘날 불평등 문제에서 기회의 평등을 중시할 것인지, 결과의 평등까지 추구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이념적 차이를 내포한다.

둘째, 이러한 차이에도 기든스가 지적했듯 전통적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려는 정치적 기획은 꾸준히 추진돼 왔다. 좌파적 제3의 길과 우파적 제3의 길은 그 증거였다. 더하여, 최근에는 기성 이념 구도에 맞서서 ‘엘리트 대 국민’의 대립을 부각한 21세기적 포퓰리즘이 부상해 왔다. 이 포퓰리즘 안에서도 트럼프주의로 대표되는 보수적 포퓰리즘과 스페인 ‘포데모스’로 대표되는 진보적 포퓰리즘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함의하는 바는 보수 대 진보라는 이념 구도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변화 대 안정, 시장 대 국가, 성장 대 분배, 공동체 대 개인 가운데 어떤 가치를 얼마나 더 중시할 것인지에 따라 상대적 이념 구분이 가능하다.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변화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21세기 이념에 요구되는 일차 덕목일 것이다.


이념과 갈라치기의 귀환

우리 사회 이념의 역사는 서구와 사뭇 달랐다. 1945년 광복 직후 보수와 진보는 분출하고 격돌했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 냉전분단 체제가 공고화하면서 진보의 활동 공간은 불허됐다. 진보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사회적 시민권을, 1999년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통해 정치적 시민권을 다시 획득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가 본격화됐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보수가 헤게모니를 행사해 왔다. 한국적 보수의 동의어는 ‘박정희주의’였다. 박정희주의는 경제성장이란 목표를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통치 논리가 핵심을 이뤘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장제일주의가 ‘시장 보수’로 거듭났다면,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의 안보를 중시하는 반공권위주의는 ‘안보 보수’로 나타났다. 시장 보수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이었다면, 안보 보수는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이었다.

주목할 것은 박정희주의에 대한 성찰적 담론이 보수 안에서 태동했다는 점이다. 박세일의 선진화론이다. 박세일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선진화를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잇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내놓았다. 특히 박세일이 주조한 ‘공동체자유주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를 모두 강조함으로써 선진화를 위한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박정희주의가 ‘한국 보수1.0’을 이뤘다면, 선진화론은 ‘한국 보수2.0’이라고 할 만했다.

2000년대에 보수로서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한 윤석열 정부에 요구된 것은 ‘한국 보수3.0’이었을 것이다. 그 방향은 가시화된 신냉전 질서에 대처하는 안보 역량과 가속하는 과학기술혁명을 선도하는 경제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따듯한 사회통합이라는 보수 본래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보수의 안보적 과제를 성취했더라도 경제적·사회적 과제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커져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일방향 명령식의 국정 운영은 쌍방향 소통이 만개한 지식정보사회 시대에 철지난 통치 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지구적 보수가 실용과 중도통합의 ‘열린 보수’로 나아가는 것에 반해 윤석열 정부가 이념과 갈라치기의 ‘닫힌 보수’를 고수하는 것은 비전·정책·전략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는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는 ‘기질적 보수’, 정부 개입보다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정치적 보수’,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을 소망하는 ‘철학적 보수’ 모두 보수라는 큰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개인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한 사회 통합을 구현하며 부국을 위한 국가의 성장에 매진하는 것이 보수의 일차 덕목일 것이다. 욕망에 대한 배려, 사회 통합, 국가의 성장, 더하여 소통과 실용의 국가 운영 방식을 중시하는 ‘열린 보수’는 ‘한국 보수3.0’이 가야 할 길이다.


보수 기득권과 차이 없는 신흥 기득권

한편,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앞서 지적했듯 민주화 시대가 열리면서 시민권을 다시 얻었다. 한국적 진보에서 영향력이 컸던 세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로 대표되는 더불어민주당 계통의 정치세력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복지국가를 결합한 ‘한국적 제3의 길’을 추구했다. 진보학계가 두 정부의 성격을 ‘중도자유주의’로 명명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주목할 것은 민주당 세력이 중도에서 진보로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2010년 이후 민주당 세력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삼았다. ‘반독재 투쟁론’이 ‘한국 진보1.0’을 이뤘다면, ‘경제민주화·복지국가·한반도평화론’은 ‘한국 진보2.0’이라고 할 만했다.
진보 성향 세력으로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에 요구된 것은 ‘한국 진보3.0’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에는 명암이 공존했다. 진보2.0의 과제인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맞서 효율적인 방역을 추진한 것은 성과로 평가할 만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고 공정 구현에서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적폐 청산에 일관해 사회통합을 일궈내지 못한 것은 그늘을 이뤘다.

진보에 가장 뼈아픈 것은 민주화 시대부터 견고한 지지층을 형성했던 2030세대 다수가 진보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시선에 우리 진보는 20세기적 이념을 고수하고 정치적 갈라치기에 주력하는, 기성 보수 기득권과 차이 없는 신흥 기득권의 ‘닫힌 진보’로 비치고 있다.

진보는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 국회에서 다수를 이루는 ‘정치적 진보’, 거리의 정치를 주도하는 ‘운동적 진보’,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문화적 진보’ 모두 진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자율적 개인을 옹호하고 구조화된 불평등을 해소하며 환경·성평등·평화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은 진보의 일차 덕목이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사회,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생산적 공존은 물론 이질성의 포용이라는 개방적 태도를 중시하는 ‘열린 진보’는 ‘한국 진보3.0’이 가야 할 길이다.

열린 경쟁을 향하여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최근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 모두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닫힌 보수와 닫힌 진보의 무한대결은 정치 양극화를 고착시키고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더하여,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인정 욕망의 분출과 함께 정치의 팬덤화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 풍경이다.

구조화된 정치 양극화와 과잉화된 팬덤정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공론장과 시민사회의 자기 절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사회와 정치세력의 열린 태도다. 다른 정치세력에 대한 관용과 절제의 정신을 발휘하고 대화와 타협을 모색할 때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상대 세력과 경쟁·대화·타협을 거부하는 이념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가 ‘적대적 공존’이 아닌 ‘생산적 경쟁’ 관계를 이룰 때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나간 이론과 이념을 넘어서 현재와 미래의 생활과 행복을 놓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생산적으로 경쟁하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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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4 [머니투데이] 박재완이 말하는 '린치핀'…"포퓰리즘 득세, 정책오염 심각하다" 24-03-07
2113 [나라경제] “인적 역량과 공정한 시스템 뒷받침돼야 경제 동력 다시 살아날 수 있어” 24-03-06
2112 [미주중앙일보] 다시 되돌아보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업 24-02-22
2111 [신동아] 닫힌 보수·닫힌 진보가 대한민국 미래 닫는다 24-02-13
2110 [경향신문] “10년전 전망보다 더 나빠져···구조개혁 방향제시·반론제기하며 구체화.. 24-02-06
2109 [BBS NEWS] '초대 청불회장' 박세일 서거 7주기 세미나..."위공 정신으로 교육·노동.. 24-02-02
2108 [뉴스핌] 박재완 "한국 경제, 뼈아픈 구조개혁으로 제조우위 유지하고 서비스생산성.. 24-01-30
2107 [뉴데일리] 전문가 "김정은, '영토완정'으로 적화통일 의지 표명" 24-01-26
2106 [의약뉴스] 고대의대 박종훈 "의사 인력보다 지속가능한 의료가 선결 과제" 24-01-19
2105 [중앙일보] 중국 선개 개입 공동 대응방안 논의하는 국제 학술회의 열려 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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