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3 10:57:05
[학회장에게 듣다]④
“하반기, 상반기보다 나을 뿐 경기 어려움은 이어질 것”
“반드시 물가부터 잡아야…공공요금 인상 시점 아쉬워”
“한국은행, 핵심이면서 드러나지 않는 블랙박스 같아야”
“중간재 내재화 노력 중인 中…대중 의존도 낮출 수밖에”
“하반기, 상반기보다 나을 뿐 경기 어려움은 이어질 것”
“반드시 물가부터 잡아야…공공요금 인상 시점 아쉬워”
“한국은행, 핵심이면서 드러나지 않는 블랙박스 같아야”
“중간재 내재화 노력 중인 中…대중 의존도 낮출 수밖에”
오일 쇼크가 야기한 1970년대 경제 위기의 충격만큼은 아니어도 2023년 전 세계가 받고 있는 경기 하강 압력은 상당하다.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는데 물가는 반대로 치솟는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을 역임 중인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현재 우리에게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이 찾아온 게 맞다”고 진단하는 이유다.
2월 8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관에서 만난 강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강도는 오일 쇼크 때보다 약해도 해결책 모색의 측면에서는 지금이 더 골치 아픈 상황일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은 요인이 원유뿐 아니라 감염병,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여건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나을 것이란 의미로, 정상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라며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기 회복과 물가 안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동시다발적으로 추구하기 힘들다. 강 교수는 정부에 “약간의 경기 하강 압박을 각오하더라도 반드시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다.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모두 물가 상승의 결과인 만큼 원인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물가 상승 억제가 시급하다는 면에서 최근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강행에는 ‘굳이 이 시점에 했어야 했나’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강 교수는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경기 하강 부작용이 부담스럽더라도 물가 당국인 한국은행이 묵묵히 독립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의 대외 소통 행보가 언론 등을 통해 너무 자주 노출되는 부분은 조금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또 강 교수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2.0%에서 1.7%로 하향 조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나선 중국과 한국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IMF가 너무 간과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다음은 강 교수와 일문일답.
- 최근 글로벌 경제 하강 흐름을 어떻게 보나.
“큰 줄기에서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50년 전에는 오일 쇼크라는 뚜렷한 하나의 원인이 있었다면, 지금은 오일뿐 아니라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공급망 붕괴·우크라이나 사태 등 배경이 복합적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또 스태그플레이션의 강도도 과거보다는 약하다. 하지만 경기는 가라앉는데 물가는 오르는 현상이 분명하고, 케인스 경제학의 전통적 관점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측면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하다고 본다.”
-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던데.
“1970년대에는 물가가 10% 넘게 오르고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뚝 떨어졌다. 지금은 물가가 일시적으로 10%를 뚫긴 했으나 금방 그 아래로 내려왔고 성장률도 마이너스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게 심각한 형태의 경기 침체와 그렇게 심각한 형태의 물가 상승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공급 측 요인에 따른 현상임이 명확하고, 국내외 많은 기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춰왔다. 나는 지금 분위기 정도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붙여도 괜찮다고 본다. 학자마다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올해 경제를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많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게 작년부터다. 고물가와 이를 잡기 위한 고금리 대응의 여파가 올해 상반기까지는 이어진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보니 상저하고란 말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게, ‘하고’를 경제 정상화로 착각해선 안 된다. 하반기가 상대적으로 상반기보다는 나아질 것이란 측면에서 상저하고란 표현을 쓰는 것일 뿐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나아질 하반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출한 연간 성장률 전망치가 1%대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 하고가 ‘하저(下低)’로 바뀔 부정적 변수가 있다면.
“하나만 꼽으라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쟁이 장기화하고 이를 둘러싼 서방세계 갈등이 지금보다 심해지면 세계 경제도 상저하고가 아닌 상저하저로 갈 수 있다고 본다.”
-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경제정책은 뭘까.
“스태그플레이션 흐름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못 잡는다. 경제를 끌어올리면서 물가를 낮추는 묘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순차적으로 가야 한다. 결국 뭐부터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약간의 경기 하강을 각오하고서라도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 경기 침체나 금리 인상 모두 물가 상승의 결과이지 않나. 원인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미국이 1979~1981년 이자율을 10%에서 21%로 확 올렸다가 서서히 내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직장인이라면 임금과 연결해 생각해보라.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였다. 5% 이상의 임금 상승률을 기록한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나. 실질임금은 뒷걸음질친 셈이다. 물가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우리는 실질임금이 떨어지는 슬픈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고물가 흐름이 장기화해 임금 상승 요구가 커지면 회사는 원가를 올려 이를 만회하고, 원가 인상이 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작년 12월 5.0%이던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5.2%로 상승 폭을 키웠다. 하향 안정화로 가던 물가가 다시 치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1월 소비자물가의 경우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의 영향이 컸다. 공공요금 추가 인상 리스크가 남은 상태이긴 하나 전반적인 물가 기조가 재상승으로 전환하는 시그널은 아니라고 본다. 정부 의도에 따른 물가 변동이라 얼마든지 통제 가능하다. 공공요금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는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물가 상승 억제의 시급성 측면에서 생각하면 굳이 이 시점에 공공요금 인상을 강행하는 정부 방침을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 정부가 공공요금을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꼭 지금 이 타이밍이어야 했느냐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유럽은 에너지 공급을 주로 민간 기업이 한다. 우리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맡고 있다. 가스공사에 미수금 9조원이 쌓이고 지난해 한국전력 적자가 30조원을 돌파한 사실은 잘 안다. 민간기업이라면 못 견딜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은 다르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공공요금 정상화 이슈를 깔아주니까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을 올리겠다고 나선다. 정부가 한 손으론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5%를 웃도는 상황이다. 정부가 고물가를 더 확실히 억누른 다음 공기업 정상화 작업에 착수했어도 됐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 물가 당국인 한국은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전임 이주열 총재와 비교해 이창용 총재의 행보가 더 눈에 띈다.
“한국은행법 1조에도 명시돼 있듯이 한국은행의 존재 이유는 물가 안정이다. 현 물가 수준이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2%를 크게 웃돈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 기조를 고수하는 한은 스탠스는 좋다고 본다. 요즘 같은 경기 둔화 시기에는 계속 금리를 올리는 한은에 직·간접적인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 중앙은행은 우직하게 자기의 길을 독립적으로 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창용 총재의 대외 행보가 언론 등을 통해 너무 자주 노출되는 부분은 조금 염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엄중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고자 정책 당국과 물가 당국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건 좋은데, 어쨌든 한은 총재가 너무 수면 위에서 얼굴을 비추는 건 안 좋다. 한은은 당장의 경기 변동이 아닌, 장기적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 핵심적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블랙박스와 같아야 한다.”
- 최근 IMF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9%로 상향 조정하면서 한국 성장률은 오히려 2.0%에서 1.7%로 낮췄다. 어떻게 생각하나.
“IMF가 한국 성장률 하향 조정과 관련해 부동산 경기 악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경쟁력 추락 등을 이유로 들었더라. 나는 IMF가 리오프닝한 중국과 한국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과소평가한 게 아닌가 싶다. 중국의 전면적인 리오프닝이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시장 문제는 경기 둔화의 원인이 아니고 결과다. 경제 여건이 악화하고 이자율이 오르면 당연히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이 다시 열리고 있다. 한국 수출, 특히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수출 실적 개선과 함께 경기가 좋아지면 부동산과 주식시장도 지금보다 살아날 것이다. 입국 길을 막았던 한·중 비자 문제도 풀릴 기미를 보인다. IMF가 이런 부분을 좀 더 고려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중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 경제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조언이 계속 나온다.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에서 제조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중간재 수출 비중이 크다는 건 중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한국도 수출 호황을 누린다는 의미다. 그간 중국이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를 수입에 의존한 건 중간재 개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중간재 분야에서도 엄청난 발전을 이뤘고, 중간재 내재화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큰 재미를 본 중간재 수출 성과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 출범 1년을 향해가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자유시장경제 기조를 따른다는 방향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쉬운 부분은 정부가 실제로 내놓는 정책을 보면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역행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은 억제하는 식으로 말이다. 자유와의 연대나 시장경제 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매칭이 안 되는 행태 아닌가.”
- 이달 7일 정부가 오후 3시 30분까지였던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고, 현물환·FX스왑시장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외환시장 개방에 대한 의견은.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리면서 우리나라와 금리 격차가 1.25%p로 벌어졌다. 앞서 일각에선 한·미 금리 격차가 확대되면 외환시장 불확실성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과거 외환위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도 될 만큼 튼튼해졌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이번 외환시장 개방 작업 착수는 적절해 보인다.”
- 끝으로,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국제경제학회는 올해 어떤 활동으로 위기 극복에 동참할 생각인가.
“경제학자의 전통적 마인드와 시각으로는 요즘 벌어지는 글로벌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원인 자체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이 점을 느끼고, 융합 연구에 나서고 있다. 한국국제경제학회도 올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협업을 시도하고, 거기서 얻은 학문적 성과를 경제 생태계에 적용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올해 정책 포럼을 2~3회 한다. 경제학자뿐 아니라 에너지·환경·안보 등에서도 전문가가 참여한다. 6월에 열릴 하계 학술대회도 마찬가지다.”
◇ 강성진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은?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46대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이다. 1978년 설립된 한국국제경제학회는 국제경제학을 포함해 경제학 전반에 걸친 이론과 정책을 연구하는 단체로,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학술대회와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1964년생(生)인 강 교수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내생적 경제 성장을 주제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외국인직접투자, 녹색성장과 지속가능발전 등에 관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는 헝가리·우즈베키스탄·베트남·라오스·몽골 등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발전 전략 자문과 인력양성사업을 하고 있다.
강 교수는 2003년부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 중이다. 현재 고려대 경제연구소장,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에너지기술정책전문가 과정(GETPPP) 단장,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재직 중이다. 또 KOICA(한국국제협력단) 기후변화 분야 전문위원을 비롯해 국민권익위원회·산업연구원·중소벤처기업연구원·제주발전연구원 등에서 연구·정책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제17대와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칼럼 원문은 아래 [칼럼 원문 보기]를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