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8월부터 공공기업에 노조 출신 1명 이사회 멤버로 활동
⊙ 원조인 독일, 2000년 들어 퇴조 중… 한국이 도입한 것은 시대착오
⊙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더욱 심화할 수도
“노동이사제를 국내에 도입한 것은 옳지 않은 결정입니다. 적어도 민간기업까지 확대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관한 입장은 단호했다. 기업법 전문가인 최 교수는 한국기업법학회장·한국상사법학회장을 거친 정통 기업법 학자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 후보가 독일에서 유래한 노동이사제 법안 통과를 압박할 때부터 줄곧 반대해왔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이사제는 국회가 ‘공공기관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오는 8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률에 따르면 3년 이내 재직한 해당 기관 소속 근로자(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근로자) 중에서 근로자 대표(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조의 대표자)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사람을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해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중 1명을 공기업의 비상임이사로 임명해야 한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에 노조가 추천한 사람이 들어가 비상임이사로 활동하게 된다.
한국의 노사 관계는 대립 투쟁 관계
“한국의 노사 관계는 아직 2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처럼 노사 관계가 4단계로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 출신 이사가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노사 관계가 2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노사 관계에는 발전 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 노사 관계는 전 근대적 노사 관계로 개별 종속 단계입니다. 2단계는 대립 노사 관계로 노조와 회사가 대립 투쟁합니다. 3단계는 협력 노사 단계로 갈등과 동반이 공존합니다. 4단계 노사 관계는 신협력 노사 관계로 사업 동반 관계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노조가 파업권을 무기로 회사와 대립하는 2단계와 3단계 중간에 있습니다.”
― 독일과 일본은 4단계라고요.
“네. 독일 자동차 산업의 임금 협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협력의 원칙과 실제 수행한 것에 대한 급여 지급의 원칙입니다. 노조가 회사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를 명확히 따져서 그만큼 급여에 반영하는 겁니다. 거기에 거시경제적 환경, 개별 기업의 특수 상황을 반영해 노사 간 협상을 합니다. 일본 노사 관계의 핵심은 생산성 원칙입니다. 노사 관계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기보다 철저히 생산성에 근거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합니다. 노조는 직급, 직종별로 근로자의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정확한 임금 수준을 산출한 자료를 가지고 협상에 들어갑니다.”
― 노조가 회사에 이바지한 만큼 더 배분받는다는 소리군요.
“그렇죠. 매우 과학적입니다. 독일과 일본 노조의 핵심은 생산성과 연동한 합리적 결정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무조건 얼마를 더 내놓으라는 식입니다. 해외 매출이 70~90%에 이르는 대기업에서도 노조가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를 산출하지 않고 무조건 요구합니다. 말이 안 되는 거죠.”
노동이사제는 독일의 제도
우리나라가 도입키로 한 노동이사제는 본래 독일의 제도인 ‘노사공동결정제도’에서 나와서 유럽 각국에 퍼진 것이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최 교수에게 독일 노동이사제의 역사를 들었다. 그가 말한 바로는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는 9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는다. 1928년 8월 독일의 노동조합원 프리츠 나프탈리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독일노동조합협회 총회에서 ‘경제민주주의, 그 특성과 과정, 그리고 목표’라는 제목의 연구 발표를 했다. 주요 내용은 ‘경제민주화의 오늘날의 요구 사항’으로 압축되는데, 경제 단체에서 노동자 계층의 동등한 대표권 확립이 주요 내용이다. 이것이 독일 노동이사제의 발아라고 볼 수 있고, 소위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다.
노동이사제가 최초로 도입된 때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다. 패전 후 혼란스러울 때 연합군의 승인 아래 1951년에 몬탄공동결정법에 도입되어, 처음에는 독일 광산·탄광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1976년 ‘공동결정법’에 따라 확대됐다.
기업들은 반대했다. 독일의 9개 주식회사와 29개 사용자 단체들은 ‘공동결정이 기업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진 제도는 없어지지 않았다.
최 교수는 “독일 기업은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 2개의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노동이사가 참여하는 곳은 감독이사회다. 근로자 수 2000명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공동결정법’, 500~1999명까지는 ‘3분의 1 참여법’에 따라 감독이사회에 노동이사를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독일에서 시작된 제도가 70여 년이 지나고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는 것이다.
― 우리나라 노조와 독일 노조가 비슷한 구조인가요? 독일식을 따를 때는 비슷하니까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우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독일 등 유럽의 노조 형태는 산별 노조로 직장 안에 노조가 없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각 단위 기업별 노조가 결성됩니다. 개별 기업의 노조가 사용자와 직접 교섭, 소통, 협력할 수 있고 파업도 자유롭습니다. 노조의 힘이 막강합니다.”
― 노조의 힘이 이미 막강하기 때문에 이사회에까지 진입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노조 외에도 노사협의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노조와 사측이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독일과 달리 근로자가 이사회에까지 진입해야 할 명분이 굉장히 약합니다. 더구나 한국 기업에는 독일처럼 감독이사회 같은 것도 없어요. 따라서 우리나라는 노동이사가 바로 경영진에 포함된다는 것이 독일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 노조가 이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현장 근로에 종사하는 사람이 어느 날은 이사회에 출석해 경영상 판단에 관여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경영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를 보면 이 제도는 기업의 유연성과 혁신을 저해합니다.”
독일에서 오히려 퇴조하는 노동이사제
노동이사제도는 현재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국영기업과 민간기업 모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14개국(독일·프랑스·스웨덴·오스트리아·덴마크·네덜란드·핀란드·노르웨이·체코·헝가리·룩셈부르크·슬로베니아·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이고, 국영기업에만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5개국(그리스·아일랜드·스페인·포르투갈·폴란드)이다.
― 유럽의 꽤 많은 나라가 도입한 것은 맞군요.
“문제는 노동이사제의 원조인 독일에서조차 쇠퇴하고 있다는 겁니다. 독일에서 노사 동수의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기업은 2002년 765개에서 2018년 638개로 감소했습니다.”
―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독일 주식법에는 이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불이행했을 때 제재 방법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피 수단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2001년 유럽법원(EuGH)이 ‘지점 설치 자유의 원칙’ 판결에 따라 공동결정법에서 자유로운 외국 지점 설치가 허용되고, 공동결정제를 의무 사항이 아닌 선택 사항으로 규정한 유럽회사법이 시행됐습니다. 2005년 남녀동등임원직임명법, 2018년 임시고용법 개정 등의 영향으로 다시 약간 늘었지만, 줄어드는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되살리려는 독일 정부의 노력도 없습니다.”
― 독일의 노조이사제가 훌륭한 제도라면 계속 시행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독일의 대표적 공동결정제도 연구재단인 ‘한스 뵈클러 재단’은 2020년에 〈공동결정제도의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보고서는 ‘공동결정제도는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구멍을 메우려는 조치가 없으면 공동결정제도의 함몰을 돌이킬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일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서 회사의 경영 상황이 나아졌다면 왜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수많은 계량 경제학적 연구를 한 결과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로 굳이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기업인들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 도움이 안 됐다는 거군요.
“유럽 경영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노동이사제는 경영 위기 상황에서 노사 화합에 이바지하는 장점은 있지만, 기업의 유연성과 혁신을 저해하고, 외국투자기업의 투자 장애를 불러오고, 근로자와 경영자 간의 거래에 따른 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 감독이사회의 의사 결정 지연에 따른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점을 보였습니다. 또 노동이사가 노조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해 기업 이익을 대변할 수 없는 것, 구조조정을 막는 족쇄가 된다는 점도 단점으로 거론됩니다.”
― 독일에서 실패한 제도를 우리가 굳이 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더구나 윤석열 당선인까지 대선을 앞두고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한 것은 ‘친노조’ 제스처로 노조 표가 절실했기 때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윤석열-안철수 원팀이 치열하게 다른 의견을 가진 안건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였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2020년 11월에 합의된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에 먼저 도입하고 금융기관을 거쳐 민간기업에 이 제도를 추진할 것으로 여겨졌다. 경영계에서는 이 점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TV토론회 등을 통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정착을 통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하자는 취지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대선 막판에 윤석열 당선인과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노동이사제가 이사회를 노사 갈등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경영상 의사 결정의 전문성, 신속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며 반대 의견을 고수했다. 안철수 위원장은 1월에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노동이사제 실시를 전면 보류하고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갖겠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노사 공동 책임에 따른 생산성 향상보다, 노사 야합을 통한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으로 철밥통만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안철수 원팀’에서 가장 뚜렷한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이 노동이사제란 얘기다.
최준선 명예교수는 “윤석열 당선인이 노동이사제 도입을 수정해야 하고, 이 제도에 대해 제대로 된 식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정통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이사제가 도입되고 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영과 노조는 별개의 문제로 봅니다. 근로자는 근로자의 역할, 경영자는 경영자의 역할을 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할 때 기업의 성과가 극대화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근로자가 이사회의 이사가 되어 경영에 관여함으로써 노동자와 근로자 신분을 같이 갖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근로자가 경영자 영역에 관여하는 건 슈퍼맨이 되겠다는 것
― 근로자가 경영자의 역할을 잘할 수는 없어서일까요.
“근로자는 경영자의 결정에 따라 생산의 한 요소를 담당하는 기업의 구성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경영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근로자, 경영자를 다 잘할 수 있다면 슈퍼맨 아니겠습니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노사 관계가 심각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경영자 위치에 가면 근로자만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물론 상법에는 이사의 비밀유지의무가 규정되어 있지만, 이사회에서 습득한 정보가 전 직원에게 유포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현직 근로자가 아닌 제3자를 추천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목적이 근로자 보호에 있는 만큼 근로자의 직접 참여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때는 후보 시절이니까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주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탐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경제학자의 논리는 자유시장과 소유권의 보장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경제적 자유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런데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투자자가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사의 임명은 투자자인 주주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법률로 기업에 노동이사제를 강요하는 것은 완벽히 모순입니다.”
― 노동계는 이사회에 노조 추천 인원 한 명이 선임되는 것일 뿐인데,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합니다.
“현재 통과된 법으로는 노조 출신 1명을 선임하고 그나마 비상근직으로 축소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2명 이상 선임, 상근직을 주장했죠. 노조는 한 명이 일당백입니다. 비록 한 명일 뿐이라도 이사회에 자리를 꿰차면, 근로자 수만 명을 등에 업은 노조 출신 이사의 의견을 이사회 멤버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공기업 노조이사, CEO와 맞먹는 지위
“지난해 말 기준 주요 40개 공기업의 부채가 550조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는 것은 익히 지적됐습니다. 지난해에도 직원들의 복리후생비, 인건비 급등, 유가족 특별 채용, 휴가비 과다 지급 등으로 기획재정부가 공기업 방만 경영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이 350개나 되는 공공기관을 모두 조사할 수 있겠습니까? 공기업이 지속적으로 적자에 시달리면 국고 보조를 받으면서 연명하는 일이 계속될 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공공기관의 부채가 정부 재정 못지않게 재정 악화 요인이 될 겁니다.”
― 공기업부터 노조이사제를 시행키로 했죠.
“이런 상황에서 노조 측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가서 회사 측의 입장에서 안건을 낼 수 있을까요? 기업의 경영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노조원의 입장에서 의견을 낼 겁니다. 공기업의 대다수는 노조원입니다. 인사과 노조원에게 인사 관련 얘기를 듣고, 재정부 노조원에게 재정 얘기를 들으면 오히려 CEO보다 노조이사 한 명의 정보가 많을 수 있습니다. 사장과 맞먹는 지위를 갖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 공공기관에 이어 정부 지분이 많은 금융기관에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만약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면 금융권은 물론 사기업에까지 노동이사제를 하라고 압박했을 겁니다.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막게 된 거죠. 공공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단골 뉴스가 노조원이 출근을 저지한다며 머리띠를 둘러매는 겁니다. 공기업 CEO는 임명직이고,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측에서 노조에 원하는 것이 뭔지를 묻고 들어줍니다. 노조는 격렬하게 반대하는 척하다가 낙하산 사장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얻어내는 거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날의 강성 노조가 된 겁니다. 공기업이 많은 국가는 망국의 길을 걷습니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공무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공기업을 과감하게 정리한 이유가 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상속세 손보지 않으면 기업들 한국 떠난다
최준선 명예교수는 인터뷰 와중에도 “공공기업 노동이사제는 입법됐기에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사기업으로까지 가는 것은 막아야 하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도 재개정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가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 사기업에 노조이사제가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요.
“여당 후보가 됐다면 민주노총, 한국노총에 소속된 개별 회사 노조가 ‘공공기관은 하는데 우리는 왜 안 하느냐’고 했을 겁니다. 적어도 그런 일은 막게 되어 다행입니다.
만일 개별 기업의 이사회에 노조 출신이 이사회 구성원으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들어가는 경우, 저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내를 떠날 수 있다고 봅니다. 노조이사가 오너가 있는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하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기업 하고 싶을까요? 누가 자기 인생을 걸고 사업을 일으키려 하겠습니까. 지금도 상속세 때문에 기업 오너들이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근근이 이자를 내는 상황인데 노조까지 나서 간섭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너가 분명히 있는 회사에 들어가 노조가 ‘근로자 회사’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 상속세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많죠.
“독일은 상속세 대신에 자본이득세라는 제도를 운용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상속할 때 주는 주식은 돈이 아닙니다. 종이쪽지에 불과합니다. 주식을 자식에게 넘기는 건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넘기는 겁니다. 기업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기업을 제대로 운영하면 잘 굴러가겠죠. 독일은 주식을 넘길 때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만일 상속자가 주식을 매각할 때 이를 재산으로 여겨 세금을 물립니다.”
― 가령 회사의 아버지 지분이 50%라면, 아들에게 50% 지분을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군요.
“맞습니다. 아버지의 지분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백신을 만드는 아스트라제네카는 원래 스웨덴의 아스트라라는 제약회사였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부인이 주식을 상속받아야 했는데, 현금이 없었습니다. 주식을 시장에 팔면 어마어마한 물량이 쏟아져서 회사의 주가가 폭락할 것이고, 심지어는 주식을 다 팔아도 상속세를 낼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아스트라는 망했습니다. 이후에 영국의 제네카사와 합쳐져 생긴 것이 아스트라제네카입니다. 스웨덴은 이 사건을 겪고 난 뒤에 상속세를 폐지했습니다.”
― 한국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은 별개의 개인이다, 아버지 지분을 이어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하는데요.
“저는 부인과 직계가족이 상속받을 때는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따져 가족의 재산은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 재산입니다. 부인, 자식이 있었기 때문에 공동 재산을 지키고자 오너가 더 열심히 회사를 키웠을 겁니다. 그것도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심리적 요인입니다.”
― 상속세 얘기는 누구도 하지 못합니다.
“상속세 축소 얘기만 나와도 부자 편들기, 힘 있는 사람을 지키려는 것이라며 아우성입니다. 실제로 60대 이상의 CEO 중에는 ‘내 대에서 사업을 끝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식들도 회사를 물려받기보다, 회사 지분을 팔아서 현금으로 달라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서는 100년 기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 대기업들은 3세대를 거쳐 4세대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할아버지 대의 지분이 아버지 대에 절반으로 줄고, 다시 손자 대에 절반으로 줄어들고, 4세대로 내려오면 한계에 다다릅니다.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할 수가 없죠. 저는 개발연대를 거치며 커온 대다수의 기업이 한계치에 다다랐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상속세를 오늘날의 제도로 유지하는 것이 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때입니다.
노동이사제를 왜 한다고 했습니까? 회사의 경영 투명화를 위하고 노조 측 인사가 회사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이 회사 생산성에 좋다고 생각해서 하겠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잘못된 생각이지만,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노동이사제를 밀어붙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를 위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 나아가 조직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애초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라면 전면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공무원을 줄이고, 규제를 혁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