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선거와 통치는 다르다… YS는 통합의 리더십”
“YS, 지역 패권 정당 리더로 모는 것 옳지 않아”
“3당 합당 없으면 군정 종식도 정권교체도 없어”
“권력욕 둘 다 같지만, 통 큰 양보한 것은 YS…”
故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앞두고 있다. <시사오늘>은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군정을 끝내고 문민정부를 열기까지 민주주의 꽃을 정착시킨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엔 지역주의 정치를 해왔다는 오해와 진실에 주목해 봤다. 과연 맞을까. 이달 4일 김형준 명지대 교수를 만났다. YS 재조명 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만남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무실에서 가졌다.
1. 지역주의 정치인가?
- 지난번 ‘선거와 통치는 다르다’고 했잖습니까. 인상 깊었습니다.
“아, 네.”
김 교수는 지난 7월 여의도에서 ‘7인의 대통령’ 세미나 중 YS 세션을 맡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전략이 있다. ‘우리가 남인가.’ 14대 대선. YS는 낙승했다. 190만 표차였다. 영남과 수도권 등 거의 전 지역에서 우세했다.
호남에서만 압도적 열세였다. 결과를 두고 ‘비호남 vs 호남’이라는 지역 대립이 심화된 선거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선거는 선거일 뿐 통치 때는 통합 행보에 나섰다. 그것을 평가하며 나온 말이다. 지역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부터 물어봤다.
-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지역주의 안에 가두더라고요.
“지역주의라는 게 대한민국의 굉장히 오래된 병폐로 얘기돼왔잖아요. 1987년도 대선 때 3김이 출마하면서 일종의 패권 정당 체제처럼 된 측면은 있죠.”
김 교수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
그해 대선, 양김은 분열했다. 지역할거가 뚜렷해진 채 치러졌다. TK(대구·경북)는 민정당의 노태우, PK(부산·경남)는 통일민주당의 YS, 호남은 평화민주당의 김대중(DJ), 충청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JP)로 나뉘었다.
- 이듬해 13대 총선에서는 지역주의가 더 뚜렷해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됐죠. 야당 정당의 합이 집권당인 민정당보다 높았잖아요. 자연스럽게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현상적으로는 지역주의 정당 체제가 고착된 면이 있고요.”
김 교수는 거듭 지적했다.
- YS 경우는 말이죠. 지역주의 안으로 끌려 들어간 것 같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만.
“그렇죠.”
고개를 끄덕였다.
“YS를 지나치게 지역 패권 정당 체제의 원인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한 평가는 아니라고 봐요.”
뒤이어,
“엄밀하게 얘기하면 지역주의는 박정희와 DJ가 붙었던 1971년 대선을 기원으로 봐야지요. 그때를 기점으로 영남이 모든 정치권력의 중심이 됐다는 게 통설이잖아요.”
박정희와 DJ가 맞붙은 7대 대선에서였다. 어떻게 지역감정이 조장됐는지 관련 기사의 대목을 살펴본다.
“공화당 후보였던 박정희 측은 선거의 달인으로 불리던 ‘엄창록’을 캠프로 끌어들였다. 엄창록은 ‘김대중에게 승리하려면 지역감정을 자극하라’는 메시지를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에게 전달했다. 4월 27일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영남지역에 대대적인 전단지가 뿌려졌다. 내용은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김대중을 대통령으로’였다. 이런 괴문서가 나돌자 영남인들의 표심은 ‘박정희’를 향했다. 결과는 박정희의 승리였다. 박정희는 김대중을 약 100만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영남에서 박정희는 김대중보다 약 170만 표를 더 받았다. 반면 김대중은 호남에서 박정희보다 약 70만 표가 앞섰다. 결국, 표차를 계산해 보면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자극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다.”
- 2010년 <시사오늘> 기사 ‘지역주의의 시작과 끝은’ 중-
2. 호남 포위론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3김 정치를 망국적 지역 병폐의 주범으로 묶어두려는 평가가 더 일반화된 듯합니다.
“하지만 아니죠.”
김 교수는 동의할 수 없다며 설명에 들어갔다.
“87년 이후로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큰 틀에서 보면 일종의 단편적인 거예요. 민주화운동에 결집했던 응집력이 점차 사라지면서 각자의 집권 기반을 마련하며 나온 거잖아요. 이걸 마치 지역주의를 활용해서 집권하려 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정확한 해석이라고 볼 수 없어요.”
- 1990년 3당 합당(노태우 민정당+YS 통일민주당+ JP 공화당)으로 호남을 포위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97년 DJ와 JP 연대는 영남을 포위한 거 아닌가요. 똑같은 거잖아요.”
- 그렇네요.
“YS가 세운 목적을 봐야죠. 어떻게든 문민정부로 전환 시키려는 것이 원래 목표였습니다. 과정 속 하나의 부산물로서 호남이 배제된 것이지, 제외부터 하고 나서 정권을 잡았다? 정확한 해석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결과론적으로야 호남이 배제됐지만, 합당의 배경만 보면 군부 통치를 종식 시키려는 관점에서 봐야죠.”
- 그렇지만 3당 합당 결과에 더 무게를 두는 시각이 많잖아요.
“아니 그러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한 것은 잘못된 거 아니에요.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거잖아요. 역성혁명이라고 하더라도 600년간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 가려고 한 것을 부정할 수 있나요.”
- 3당 합당이 야합이라는 평가는요.
“16대 대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보세요. 노 후보는 반(反)기업을 얘기하고, 정 후보는 기업을 대표하는 자였어요. 어떻게 두 사람이 손을 잡을 수 있나요.”
그러면서 김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3당 합당도 마찬가지죠. 단순하게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일종의 야합을 한 거라고 얘기한다면 다른 연대들도 나와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야합이라는 말이 YS를 폄하하는 뜻에서 쓰였다는 점을 꼬집는 듯했다.
“물론 민주화와 반민주화 세력이 결합한 거니 박수받을 일은 아니죠. 다만, 더 긍정적인 결과가 많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하잖아요.”
- 그 관점에서 본다면요.
“다차원적으로 봐야죠.”
침을 삼켰다.
“YS는 3당 합당을 통해 문민정부를 열고 과거의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 종식하는 여러 조치를 했어요.”
대표적인 게 하나회 청산이다.
“다시는 군인들이 정치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잖아요. 친일 잔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일,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피해자 보상에 나선 것도 정권을 잡고서 최초로 한 일이었죠.”
- 3당 합당을 안 했으면 군정 종식이 안 됐다고 보는 건가요.
“안됐다고 봅니다.”
잘라 말했다.
- 그럼 어떻게 됐을까요.
“다시 분열됐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