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696] '장자방(張子房)' 기행
모든 구경 중에서 전략가, 즉 '장자방(張子房)' 구경이 특히 재미있다. 전략가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콘텐츠가 풍부해서 적어도 6시간 이상 한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누가 전략가인가? 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박세일(61) 서울대 교수와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을 지낸 황태연(54) 동국대 교수를 꼽는다.
박세일의 특징은 국내의 인재 풀을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를 15년 했고, KDI에서 5년,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3년, 국회의원 1년 반, 그리고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1년을 있었다. 그는 이런 경력을 거치면서 국내의 머리 좋은 수재들이 누구이고, 어떤 성향과 주특기들을 가지고 있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한국에서 전략을 짜낼 만한 고급 두뇌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 놓고 있는 사람이 박세일이다.
그가 생각하는 전략의 이념적 기반은 '정신자본(mental capital)'이다. 정신자본의 핵심은 애국심이다. 애국심을 가진 집단이 많아야만 나라가 발전하고, 그 바탕에서 전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다음에는 제대로 된 '싱크탱크'가 있어야 된다는 지론이다. 그래서 100년 전 미시시피 강에서 목재상을 하던 브루킹스라는 인물이 기금을 내 놓아 만든 브루킹스 연구소를 높이 평가한다.
황태연의 관상은 체구가 작은 고릴라 상에 해당한다. 원숭이과(科)는 멀리 보는 능력을 지녔다. 고릴라는 원숭이보다 스케일이 크다. 그래서 국가전략을 연구한다.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독일에 유학 가서 서구의 정치철학을 연구했다. 그중에서 카를 마르크스 이후의 대안이론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과거에는 육체노동자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지식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중도개혁주의로 가야 된다는 게 그의 주된 전략이다. DJ의 집권을 가능케 한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이라는 전략도 황태연의 작품이다.
주역에도 능하다. 그가 펴낸 '실증주역'을 보면, 민주당의 고비마다 그가 주역 점을 쳤던 서례(筮例)들이 소개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전략에는 인모(人謀)뿐만 아니라 귀모(鬼謀)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왼손에 카를 마르크스라는 '인모'를 들고 있고, 오른손에 주역이라는 '귀모'를 들고 있다.
♤ 이 글은 2009년 8월 16일(일) 조선일보[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