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 행정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문제 더 커지기 전에 정리하자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의 명분 아래 여의도 25배 넓이의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6개의 기업도시 및 10개의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이 도시들은 '정치가 만든 도시'라 국가 지원 없이 자생할 능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노 정권이 이것을 '지역이권사업'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 나눠준 탓에 향후 합리적으로 수습할 방도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 정권이 준 선물을 해당지역 지자체장, 국회의원 및 주민들이 결단코 사수(死守)하려 하기 때문이다.
행정도시(세종시)는 인구 50만 규모로 조성되고 있으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특별시'로 만들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그 인구를 채울 길이 난망하다. 국무총리실 및 12부4처2청의 공무원 1만여명이 가족과 함께 이주한다 해도 3만명을 채우기 어렵다.
행정부 일부만 존재하는 도시는 원래 노 전 대통령 자신이 부정(否定)한 사업이다. 그는 해양부 장관 시절 부산 유지들로부터 해양부 부산 이전을 건의받자 "장관 취임 후 30일 만에 39차례 출장을 갔는데 그중 3분의 2가 국회·정당·국무회의·청와대 등과 관련됐다. 해양부를 부산으로 옮긴다면 서울에 따로 사무실을 둬야 하고 장관은 거의 서울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득한 바 있다.
이처럼 행정수도는 '정략(政略)'을 빼면 당초부터 존재할 이유가 없던 사업이다. 두 도시에 정부를 나눠 배치함으로써 초래될 국정 혼란, 행정 비효율, 공무원 사기저하, 경제적 낭비, 국민 불편 등의 거대한 국가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어떤 나라도 이런 무모한 사업을 벌일 수 없다.
혁신도시는 충청권 수도 이전에 대한 비(非)수도권 지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노 정부가 175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혁신도시의 기본 개념은 정부나 공공기관 설치를 촉매로 활용해 해당 지역사회의 산업혁신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을 배양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과 이에 맞는 선택과 집중이 성패의 열쇠가 된다. 그러나 노 정부는 '새로 혁신도시를 만들어 공공기관을 골고루 나눠주는' 방식을 택해 당초부터 혁신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갑자기 건설되는 10개 신도시에 큰 것과 작은 것을 끼워주는 식의 공공기관 안배(按配)가 이뤄졌으며, '공공기관 쟁탈전'에 각 지자체의 정략·투쟁·협상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 혁신도시들은 신도시 규모로 도시를 만들 때부터 실패가 담보됐다고 할 수 있다. 구(舊)시가지를 재개발해 인구·산업을 유치하는 게 비용이 덜 들고 실패위험을 축소하는 것이지만, 노 정부는 균형개발 업적을 보여주고 '임기 안에 대못을 박아 두기 위해' 무조건 신도시 건설부터 재촉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도시기반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공공기관 직원이나 관련 기업은 이주를 꺼리게 되고, 실패할 가능성은 커졌다.
기업도시는 민간기업에 도시개발권을 주는 동시에 도시기반시설 비용을 부담시켜 기업의 생산·연구개발·유통 시설과 거주민의 정주(定住) 시설이 상호 융합하도록 종합건설하자는 개념이다. 기업과 도시의 상생을 생각해 원래 전경련이 요청한 것이나, 이것도 노 정권이 '지방균형도시'로 만들어버렸다. 기업이 원하는 곳에 만들어야 할 기업도시를 정부가 각 지방에 정치적 선물로 나눠준 것이다.
기업도시의 경우에도 지금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도시발전계획은 지자체의 의타심을 길러 오히려 도시의 자조(自助)·자생(自生) 능력을 해칠 가능성이 커진다. 오늘날 파주·탕정·당진·군산 등 성공한 기업도시들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도시 발전을 주도해 완성된 '자생도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미 수렁에 빠진 행정·혁신·기업도시 문제의 합리적 해결책은 문제를 더 키우기 전에 정부가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지자체와 협의해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권의 견고한 의지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권 스스로 포퓰리즘 유혹을 뿌리치고, 야당·지자체·주민의 결사적 저항을 뚫고 나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치권과 신도시 이해 관계자들도 합리적 대안 모색을 위해 정부와 협의에 나설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전 정부가 선사한 신도시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부실기업을 떠맡은 꼴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부가 앞으로 17개 도시를 무한정 지원할 수 없고 그 효과도 실상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국익을 위해 그리고 주민의 장래이익을 위해 향후 대안 모색이 필요함을 주민에게 홍보할 자세가 돼야 한다.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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