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 '이념의 장(場)' 계속땐 노사대화 없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노사(勞使) 소통하려면
우리 노사관계 시스템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문제다. 우리나라만큼 노사정 '사회적 합의(social corporatism)'의 틀을 갖고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에 자랑할 만한 노사정 합의를 도출해 낸 경험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여전히 저(低)차원적인 노사 간 대립구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노사정 합의기구는 무엇보다도 노동계가 환영해야 할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노동운동은 이념적인 명분론에 매몰돼 이를 백안시하고 있다. 참여는 하지 않고 결과물만 챙겨가려는 것 같이 보인다. 또 합의 도출에 매달릴수록 정부가 노사단체에 끌려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합의도출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노사정 기구를 통해 논의가 정제되면 입법 혹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최선이 아닌 차선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그 과정에서 원초적인 갈등이 흡수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노동단체의 리더십 부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대화 과정이 '이념 대결의 장(場)'이 됨으로써 전문성이 실종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비정규직은 무조건 나쁘고 없어져야 한다'는 가치관을 전제로 대화하면, 문제의 실체에 접근할 수도, 해법을 찾을 길도 없다.
그 와중에 정책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고 비정규직의 고통만 배가된다.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기대효과와 부작용을 정확히 헤아리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이 없으면 정치적 구호를 찾기에 급급할 뿐이다.
여기에 사용자측의 비타협성과 비전문성도 일조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은 회원사의 입장을 그대로 좇아가거나 눈치 보기에 급급해 노사관계 주체로서의 향도적(嚮導的)·계몽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1997년 정리해고법제의 도입을 주장, 결과적으로 노동의 유연화를 저해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용자단체는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노동조합과 유연한 대화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 내부적으로 회원사를 설득시킬 자세와 능력도 갖고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보더라도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노동의 논리가 무시되기 일쑤이다. 경제 내지 권력 부처의 압도적 우위로 인해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이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과다하게 치른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과거 행정자치부의 단견으로 공무원노조법이 표류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최근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비정규직법 개선, 전임자 급여와 복수노조 등 현안이 산적함에도 불구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정부 기능이 보이지 않는 것도 우려할 일이다.
'전문성의 부재→교조적 입장의 견지→소통의 단절→불신의 증대'로 인한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노사정 모두 전문가들의 지혜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노동단체도 지금보다 더 많은 학자가 활동할 공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경영계는 일본의 예처럼 현장 인사노무 담당자와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현장성과 전문성을 제고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는 노동논리와 경제논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능과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연공 순으로 '밀어내기 식' 보직교체를 거듭하는 한 전문성과 책임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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