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2006년 초 펴낸 《대한민국 선진화전략》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10년 동안 이어지는 좌파 정권에 맞서는 이론적 근거를 찾던 우파 지식인은 물론 좌파 지식인까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도 책을 찾는 사람이 이어졌다. 2007년 말 대선에서 우파가 '선진화'를 내걸고 승리하는 데 이 책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가전략》은 그로부터 3년 가까이 박 교수가 발전시켜 온 이론적 성과를 담았다. 지금 우리의 국가 목표가 '건국-산업화-민주화'에서 이어지는 선진화 혁명이고, 그 이념은 공동체자유주의이며,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국민 통합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새 책에서도 되풀이된다. 선진화를 경제(1인당 소득 3만달러의 '항아리형' 경제), 정치(포퓰리즘을 넘어 자유민주주의로), 사회(군자와 교양인의 사회), 문화(다문화 공생), 국제(세계 공헌 국가)로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도 비슷하다.





그러나 앞의 책이 이름은 '전략'이지만 '담론'에 가까웠던 데 비해 이번 책은 문자 그대로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 앞의 책을 펴낸 후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설립해 뜻을 같이 하는 지식인들과 함께 담론을 전략으로 숙성시켜 온 작업의 성과를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전략서'로서 이 책의 성격은 대외적으로 안보와 북한문제, 대내적으로 신(新)발전체제를 다룬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박 교수는 한국이 그동안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하면 됐지만 이제 다극(多極)체제가 도래하는 상황에서는 독자적인 세계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은 동아시아에 패권주의의 등장을 막고 자강(自强)·동맹·균세(均勢)·사상문화 전략을 두루 사용해서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북전략의 목표는 북한의 근대화와 북한 동포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의 소프트 랜딩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점점 높아지는 하드 랜딩의 가능성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한편 세계화시대의 발전체제는 나라를 독자적 국제경쟁력을 갖는 인구 500만~1500만명의 몇 개 광역자치체로 나누고 이들을 묶는 '경제적 연방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또 지식과 정보의 생산이 고도의 독과점으로 이뤄지는 시대에는 세계적 핵심 대학과 연구소에 우리의 '빨대'를 꽂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박세일 교수는 한국의 근대화는 모방적이었지만, 선진화는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은 서양 근대문명의 장점과 동양·한국의 장점을 결합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회통(會通)·정명(正名)·역동의 특장을 잘 살려서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 과거·현재·미래, 민족과 세계, 지도자와 국민이 조화를 이루는 선진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박 교수가 그리는 국가전략은 역사교육, 법치주의에서 국가리더십, 과학기술, 복지·고용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그 각각은 많은 쟁점을 안고 있으며 앞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