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국가경영 고민하는 新정치세력 등장해야"
"정치권 반성세력과 정치권밖 정책세력 결합"
"北변화 오늘의 문제"…"입장 정리하지 않으면 美.中이 운명결정"
선진화 담론을 제시해 한나라당의 재집권에 기여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0일 "기성 정치권내에서 정치의 선진화를 생각하는 '반성세력'이 등장해 정치권밖의 정책세력과 결합한 뒤 국가경영을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의 초청으로 홍콩을 방문한 박 이사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국가경영능력 부재와 국민과의 소통능력 부재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북문제와 관련해 박 이사장은 "북한의 변화는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라면서 "우리가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 우리의 입장을 정해놓지 않으면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머물면서 '대한민국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박 이사장은 이번 홍콩 방문기간 홍콩 정·관·재계 인사들을 만나 한중관계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서울대 법대교수 출신인 박 이사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거쳐 17대 때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선진화' 담론을 제기해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에 기여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논객이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요지.
-홍콩을 방문하기 전 일시 귀국해 국회에서 특강을 했는데,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정치권이 국가경영은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 싸우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 중에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여야가 합의해 예산지원을 결정했다. 우리는 대선이 끝난 뒤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상임위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야를 떠나 국가경영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국가경영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는.
▲냉전시대에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운영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냉전이 끝나고 다극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세계전략, 국가운영 전략을 갖고 있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 외교, 안보, 국방,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측면에서 국가운영 전략, 세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정치권이 할 수 있나.
▲'권력투쟁적 정치'가 아니라 '국가경영형 정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 정치에는 국가전략이 전혀 없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국가운영 전략을 수립하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물론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KDI처럼 경제전략만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로는 부족하다. 경제전략뿐 아니라 정치, 외교, 통일, 안보,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국가전략과 세계전략을 수립하는 '21세기형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행정부 내부에도 청와대가 됐건 총리실이 됐건 이러한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각 정당의 연구소도 국가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있어야 한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현재의 정치는 개인 중심의 붕당정치,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권력투쟁형 정치다.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도 국가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국가경영형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중진국 선두주자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 국민을 단합시키고 비전과 국가운영 전략을 제시는 정치가 없다면 우리나라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새로운 정치를 위해선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현재 정치권의 국가경영능력 미약과 국민과의 소통능력 부재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정책전문성이 없고 도덕적 리더십도 없는 상태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기성 정치권내에서 정치의 선진화를 생각하는 '반성세력'이 등장한 뒤 정치권 밖의 정책세력과 결합해 국가경영을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국가경영을 지향하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시 정치권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
▲기존 정치권내의 반성세력과 정책세력이 힘을 합쳐 국가경영을 고민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보탬이 되는지는 3월 귀국한 뒤 심사숙고해 결정할 것이다.
--미국에서 집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책을 쓰고 있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대한민국 국가전략'에 이어 '대한민국 세계화 전략'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평소 북한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북한의 변화는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다. 어쨌든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 우리의 입장을 정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차원이건, 정당차원이건 북한의 변화시에 대처할 수 있는 확고한 입장을 세워놓아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우리가 확실한 입장도 없는데 어떻게 미국이나 중국을 설득하겠나. 중국이나 미국이나 우리가 입장을 확실히 정해놓고 설득을 하면 상당부분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북한의 변화에 대비해 우리의 입장을 정해놓지 않으면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 역사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쓰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홍콩=연합뉴스) 정재용 특파원
기사입력 2008-12-10 10:09